Erfurt. 순간을 믿어요.


S의 고향이기도 한 Erfurt를 가고 싶었던 것은 크뢰머다리(Krämerbrücke)를 보고 싶어서였다. 피렌체 베키오 다리만큼 멋질까? Erfurt를 간다는 얘기를 듣고, L은 선뜻 새벽 기차를 타고 오겠노라고 했다. 

그래서 찾게 된 Erfurt는 바이마르에서 기차로 20분 남짓 거리에 위치했다. 내가 탄 기차 안에 비치된 작은 서재.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멀리서 오는 L을 기다리는 동안 플랫폼에서 기차 스케쥴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이 기차를 타면 저기 멀리 러시아까지 갈 수 있구나.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것은 내게 여전히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익숙하거나 낯선 지명을, 또 새로운 표기법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L의 기차가 도착했다.

기차역에서 내리면 바로 보이는 Willy Brandt ans Fenster. 서독의 Willy Brandt가 동독을 찾아 정상회담이 열렸던 역사적 현장.

Erfurt 역시 멋진 도시였다. 굳이 Luther의 흔적 때문이 아니라도, 대부분의 유럽 도시들이 그러하듯 멋진 성당/교회들이 즐비했고, 우리는 마음에 드는 성당에 들어가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듣거나 스테인드 글라스를 구경하고 나왔다.

우연히 마주친 산티아고 순례길 표시도 반가웠다. 귀엽게 손뜨개질 옷을 입은 거리의 표지판. 그러고보니 순례길을 다녀온지도 벌써 8년이 훌쩍 넘었구나. 되짚어보는 과거의 시간의 간격이 커질 수록 나이를 먹는 것을 실감 한다. 소소하게 1, 2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이젠 5년, 10년, 15년씩 거슬러 되짚어 보아도 내가 이미 성인이 된 후다.

기대했던 크뢰머다리는 생각보다 그 스케일이 아담했고, 보수 공사 중이었다. 거리는 아기자기 참 예뻤지만, 관광객으로 무척 붐벼서 금방 자리를 피했다.

인파를 피해 한적한 곳을 찾다가 Erfurt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Citadel에 올랐다. 여전히 견고하고, 굉장히 잘 보존된 곳. 스웨덴, 프로이센, 나폴레옹, 제정 독일, 나치 독일, 소련, 동독 등, 수많은 지배 세력이 Erfurt를 스쳐가는 동안, 이곳도 지켜야할 것들이 매번 달라졌겠지.

물길을 따라 걷는 동안, 더없는 평화와 고요가 느껴졌다. 물길에 꽃화분을 올려 장식하고, 강아지와 물놀이 하는 마을 사람들. 이런 평화는 가까이서 보고 있어도 너무 picture-perfect한 동화 같아서, 그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한다. 한참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이러한 아름다움과 평화가 세상 더 많은 이들에게 허용되면 좋겠다는, 그들의 일상 풍경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헛된 바람과 쓸쓸한 생각이 스쳤다.


덧글

  • 이글루스 알리미 2019/11/21 08:05 #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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