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ańsk. 순간을 믿어요.

8년 만에 찾은 그단스크. 깊고 깊은 가을이었던 그때와 달리, 해가 쨍쨍하고 활기찬 여름날이었다. 파란만장한 시간을 품고 있는, 수없이 무너지고 재건되고, 그럼에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도시.

이번 여행에서 그단스크는 Hel을 가기 전 잠시 들리는 도시였다. 그단스크에 엮인 따뜻한 추억들 덕분인지, 다시 들러도 정말 좋았다. 8년 전 11월 초, 새벽에 일어나 혼자 걸었던 구시가지의 고요함과 엄숙함, 친구들과 다녀왔던 쇼팽 음악회, 카페에서 서비스로 받았던 하트 모양의 진저브레드. 

구시가지는 성도미니코 축제를 찾은 관광객으로 매우 붐볐다. M과 나는 구시가지에서 살짝 벗어나, 2014년에 새로 개장했다는 셰익스피어 극장에 가기로 했다. 17세기부터 영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번성하게 된 그단스크의 셰익스피어 연극. 현재 재건된 런던의 Shakespeare's Globe를 포함하여 전세계에 몇 개 없었던 Globe Theatre이 바로 그단스크에 있었다고 한다. (그단스크 국제 셰익스피어 페스티벌도 무척 유명하다고.) 그 역사를 이어 같은 자리에 새로 지어진 셰익스피어 극장은 Elizabethan theatre를 현대식으로 해석하여 구현한 모습이었는데 검은 벽돌의 외부는 'black box'를 상징한다고 한다. 흥미로운 구조의 극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가이드 분의 재밌는 설명을 듣고, 당시 사람들이 연극을 향유하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윗 사진은 인터넷 검색)

날씨 관계로 개폐식 지붕이 열리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은 무척 아쉬웠지만, 굉장히 알찬 방문이었다. 다음 기회에는 이곳에서 공연을 볼 수 있기를.

그리고 발걸음을 옮긴 것은 쇼펜하우어의 생가. 옛생각을 하며 다시 찾은 그 곳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마구 내리기 시작했는데, M은 그 타이밍이 쇼펜하우어 답다며 웃었다. 아름다운 그단스크 대성당 옆 구시가지에 위치한 그의 생가. 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던 그는 왜 세상을 달리 보았을까. 과민하고, 고독하고, 심오했던 철학가. 비를 피하느라 들린 맞은편 카페에서 쓸쓸하게 느껴지는 그의 집을 한참 바라보았다. 지금도 많은 관광객에게 외면당하는,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는 조그만 명판만이 그의 시간을 확인 해주는 것 같았다. 지금은 도서관이 된 그가 유년 시절을 보냈다는 집에 들러 그의 책을 찾아보고 왔다.

그의 집에서 멀어지니,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말갛게 개었다. 북적이는 거리를 지나면서 조카 T에게 줄 선물을 하나 샀다. 다음에 언제 또 이곳을 찾게 될 지 모르겠지만, 그때도 나는 분명 이곳을 무척 좋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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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단스크에 대한 옛 기억들.

덧글

  • 좀좀이 2019/10/23 06:50 # 삭제 답글

    사진들 보면 그단스크는 웅장함이 있는 도시 같아요. 쇼펜하우어 집으로 다가가니 날이 흐려지고 멀어지니 다시 날씨가 개었다니 미묘한 기분이 드는 경험이었을 거 같아요^^;;
  • iris 2019/10/24 09:25 #

    네. 화려하고 복잡한 역사를 가진 멋진 항구도시예요. 비 오는 풍경과 쓸쓸해 보이는 그의 집과 고독했던 그의 삶이 어쩐지 어울리는 것 같아서, 그건 그것대로 또 괜찮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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