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lin & Potsdam. 순간을 믿어요.

새벽부터 비행기를 타고 런던에서 베를린으로 날아왔을 때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날씨도 꾸물꾸물. L1과 약속을 다음날로 미루고, 일찍 체크인이 가능한 공항 근처 숙소를 예약했다. 약을 먹고 조금 자고 일어나니, 이러고 누워있는게 조금 아깝게 느껴져서, 책 한 권을 들고 또 1일권을 끊어 '발길 닿는 곳으로' 스타일 여행을 시작했다. 그렇다해도 결국 발길이 오래 머물게 되는 곳은 추억들이 깃들어 있는 장소들이었지만.   

자작나무가 네 줄로 길게 심어진 산책로를 오래도록 걷고, 외진 곳에 닿았다. 자주 다니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챙겨 나간 허수경의 '너 없이 걸었다'를 읽었다. 꽤 한참 기다렸는데 그 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지고,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L1을 만났다. 이사간 L1의 집엔 처음이다. 가을이 되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렇게 생각했던 8월의 여름날이 빠르게도 지나고, 벌써 저 푸른 덩굴에 가을이 곱게 어리는 시기가 되었다.

학교 일정으로 베를린에서의 시간이 촉박하여 사실 L1을 제외한 친구들에게 제대로 연락을 못했는데, 마침 L2가 얼마 전 베를린으로 이사를 왔다고 하여 급만남이 성사되었다. 동네 카페에서 오래도록 얘기를 하다가, 날씨가 너무 화창하고 좋아서 포츠담에 가기로 했다. L1과 L2 모두, 이젠 복잡하고 활기찬 베를린에서 벗어나, 추후에 한적한 포츠담으로 이사를 가고 싶다고 해서 내심 놀랐다.

포츠담에 다같이 왔었던 7년 전 여름날을 같이 추억하며 공원을 한참 걷다가, L1이 오리배를 타자고 제안했다. 만나면 늘 그렇게 즉흥적이고 신나는 우리. 그렇게 시작된 Havel 강 탐험. 매일 두 시간 이상씩 사이클링을 한다는 L1과 L2에 비해 부끄럽기 그지 없는 내 다리와 체력이었다. 

반짝이는 강물. 살랑이는 바람도 좋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반갑게 흔드는 손인사에 나도 웃으며 답하고.

Havel강의 '오페라 하우스.'

또 소중한 추억 하나를 마음에 새겼다.

두 달도 넘은 여름날을 되새겨보는 가을날. 오는 길에 친구들이 준 책과 베를린이 담긴 머그. 진하게 커피를 끓이고 책장을 넘기며, 반짝이는 여름날을 추억하고, 지금 내게 주어진 소소한 행복과 평화에 안도감이 든다. 소중한 것을 깨닫고, 감사할 일들이 참 많은 요즘이다. 모두 건강하고, 소박한 행복들이 이어질 수 있다면.

+ 가을을 품은 L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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