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curești. 순간을 믿어요.

8월의 부쿠레슈티는 무척 더웠다. 공항으로 마중을 나와 준 D. 내가 유럽에 올 일이 있으면, 아일랜드로, 독일로 몇 번이나 일부러 보러 와 준 고마운 친구이다. 이번엔 이렇게 내가 D의 나라에 방문할 수 있어 참 좋았다. D는 내게 보여주고픈 곳이 참 많다고 했고, 회사의 루마니아 동료도 시비우를 강력히 추천했던지라, 짧디 짧은 내 일정은 아쉽기만 했다. '이번에 다 못 보고 가면, 다음에 또 보러 올 이유가 생기니까.' 라는 말로 아쉬움을 달랬다. 

동유럽의 파리, 라는 별명에 걸맞게 화려한 부쿠레슈티의 건물들은 과거의 영광을 짐작하게 했다. 다양한 건축 양식과, 휘황찬란했던 시절과, 또 어두운 시절의 애환과 슬픔이 모두 뒤섞인 매력적이고 오묘한 도시. 

그리고 그 어려운 시절을 버티고 이겨낼 수 있게 한 그들의 종교. (러시아/우크라이나 정교회 성당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석양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D는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루프탑에 데려가 주었다. 대학원 시절, 일부러 석양을 보기 위해 느릿느릿 걷고, 또 몇 번이나 교정을 돌곤 했었지,하고 추억을 함께 곱씹었다. 아름다웠던 부쿠레슈티의 석양. 또 기억하고 싶은 하늘이다.

그리고 대망의 인민궁전. (D의 석사 논문 주제이기도 했다.) D는 바로 옆에 지어지는 (인민궁전보다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사실 엄청나게 큰) 정교회 성당을 보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과연 '인민-사람들'을 걸고 지어지는, 행해지는 것들 중에 진정 그들을 위한 것들은 얼마나 있을까?  

차우셰스쿠의 야심작은 명성만큼 (이유없이) 엄청나게 화려했다. 어딜가나 눈이 부신 샹들리에와 화려하기 그지없는 방들. 모든 것이 그와 그 부인을 중점으로 디자인 되었건만, 정작 그들은 단 하루도 이 곳을 이용해 보지도 못하고 총살 당했다. 가이드 분은 초등학교 시절, 누에를 키우는 일에 동원되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때 자기가 키운 누에에서 나온 실크들은 이 궁전의 어마어마한 커텐들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다며 웃으셨다.

인민궁전 테라스에서 바라본 전경. 그리 멀지도 않은 과거, 이곳은 얼마나 많은 죽음을 목도하고 품었을까.

머리를 식히고자 찾아간 부쿠레슈티의 외곽. 자그마한 성이 있었는데 평화롭고 참 아늑했다. 아마 부쿠레슈티 본연의 모습은 이 풍경과 좀 더 가깝지 않았을까.

그리고 볼거리가 많았던 민속촌. 지방마다 각기 다른 특색을 갖춘 정교한 목조 건물들과 문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삶의 지혜가 엿보이는 그들의 문화. 또 귀여운 풍차와 관람차.
 
저녁에는 분수쇼를 보러 갔다. 약 한 시간동안 다양한 음악에 맞춰 펼쳐지는 멋진 분수쇼. (위 이미지는 인터넷 검색.)

수많은 이들을 억압했던 독재의 상징, 인민궁전이 가까이 위치한 광장에서, 혁명의 물결이 펼쳐졌던 곳에서, 이렇게 신나는 음악과 분수쇼를 보며 여름밤을 즐기고 있자니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아직도 존재하는 수많은 독재국가들의 미래 역시 지금의 부쿠레슈티와 같은 자유로움으로 귀결될까. 이러저러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있을 때, 마침 흘러나오는 노래는 'Que será, será- Whatever will be, will be- The future is not ours to see... Que será, será- Whatever will be, will be....'

짧은 방문이었지만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남겨준 부쿠레슈티. 자유와 낭만을 사랑하고 오랜 역사를 품은 이 도시가 충분한 자긍심을 가지고 계속 전진하길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다.

훗날 D와의 재회는 언제 어디서 이루어질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또 멋진 추억을 하나 추가했다. 

+ 보너스는 귀여운 커피숍들. :)

인생 최고의 flat white를 부쿠레슈티에서 만났다.




덧글

  • 좀좀이 2019/09/26 17:56 # 삭제 답글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 대한 기억은 뭔가 침울하고 음침한 것 같은 느낌이 지배하는 도시였다는 것 정도에요. 사진들 보니 제가 부쿠레슈티 갔던 2009년과 별로 안 바뀐 거 같아요 ㅎㅎ 커피숍 인테리어 참 예쁘네요^^
  • iris 2019/09/27 07:33 #

    표면적으로는 아직 공산주의/독재시절의 흔적이 남아있는 듯 했어요- 여러모로 참 매력적인 나라인데, 점점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네요. 부쿠레슈티 외에도 멋진 도시가 많은데, 시간/인프라상 여건이 맞지 않아 이번에는 가보지 못한게 아쉽네요. 네, 예쁜 커피숍들이 참 많았답니다. :)
  • 2019/09/28 07:5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09/30 01:0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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