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 순간을 믿어요.


광활한 사막에서, 우리 모두가 이방인으로 만났다.

- 알제리에서 태어난 프랑스인 고고학자 분은 머나먼 그 곳에서 고대의 흔적을 연구하고 계셨다. 이 낯선 땅에서 수 십년 째 홀로 하고 계시는 일에 대해 듣고 그 열정에 경외감이 들었는데, 이상하게도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까뮈였다. "까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말 알제리에서는 그렇게 잊혀져 가나요?"-pied noir를 실제로 만난 것은 처음이라서 자기 소개를 듣는 순간부터 꼭 묻고 싶었다. 그리고 나도 꼭 언젠가는 까뮈의 흔적을 찾아 알제리에 가보고 싶다고... 하지만 일과 동떨어진 그 질문들과 내가 동경하는 지중해적 사상에 대한 얘기는 혼자 조용히 꿀꺽 삼키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글쎄, 그 다음이란 시간이 올까. 작별인사를 하고 어쩐지 아쉬워하다, 문득 각자의 인생보다 훨씬 더 길고 긴, 지나간 시간들을, 과거의 흔적 안에서 매일매일 살아가는 이들에게 '다음'이란, 미래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 모래바람을 맞으며, 시간의 풍화 속에 남겨진 것들을 바라 보았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한 관념과 상상의 범위를 훨씬 넘어선 아주아주 오래전 옛날, 여기는 바다였다지. 절대적인 고요와 적막함 속에 묻혀 석양을 바라보면서, 남아있는 것과 앞으로 남아있을 것들을 생각했고, 순간 굉장히 쓸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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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덤을 방문하는 자에게 무덤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무덤을 방문하는 자들이 무덤을 앞에 두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결국 과거를 들여다보는 자의 내면에는 미래를 점치고 싶은 내면이 있으며 미래를 점치려는 내면은 현재의 문제를 분석하려는 내면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왜, 현재인가? 그 시간, 현재라는 시간만을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 현재라는 인간의 시간만이 나와 너를 이렇게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 고고학자들이 문화 지층cultural stratum/Kulturschicht이라고 부르는 지층은 이렇게 세대가 지나면서 겹으로 겹으로 두터워지다가 결국은 언덕 모양을 이루는 것이다. 사람들이 살기를 포기하고 떠나 버린 오리엔트 도시들을 발굴하는 일은 그러니까 언덕을 파는 일이다. 언덕은 언덕이되 그곳에 살았던 인간의 기억을 궁글게 안고 있는 기억의 언덕을 파내려가는 일이다. 기억의 맨 아래층에는 아마도 폐허 도시가 태어날 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위에는 유년이, 또 그 위에는 청년의 시간과 장년의 시간과 노년의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죽음의 시간은 맨 위에 얹혀져 있다. 폐허 도시의 죽음의 시간은 지금과 가장 가까운 시간이다. 그러나 놀라워라, 인간의 시간과는 달리 폐허 도시의 시간은 죽음의 순간인 지층을 파내면 순간순간마다 유년과 청년과 장년과 노년이 한 지층 안에 어우러져 숨쉬고 있다. 각각의 지층이 머금고 있는 시간의 스펙트럼. 발굴은 도시의 죽음을 파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 도시의 죽음은 그 도시에 아무도 살지 않으면서 진행된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곳. 아니 살 수 없는 곳. 모두가 떠나버린 그 자리에는 바람과 흙과 우연히 지나다가 터를 잡은 억센 잡초들이 그리고 그 잡초들 사이를 기어다니는 작은 파충류나 지네들이 모여든다. 그런 자연들은 옛날에 이곳에 도시가 있었고 사람들이 살았고, 하는 사실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난 뒤 더러 그곳에는 무덤이 하나씩 둘씩 들어서기도 한다. 허나 무덤을 그곳에 들어앉힌 사람들은 언젠가 그곳에 도시가 있었다는 것을 잊어버린 이들이다. 그들 역시 도시가 존재했다는 사실과는 무관하다. 폐허 도시는 누군가 오래된 잊혀짐에서 그 도시를 불러내면서 새롭게 태어난다. 도시로서는 아무런 기능을 할 수 없으나 폐허 도시라는 이름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 과거는 다만 현재를 살아가는 나를 통해서 해석되어지는데 현재를 살아가는 나란, 다만 나와 시대의 한계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 허수경, '모래도시를 찾아서'' 중.



덧글

  • 2018/11/24 02:4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11/25 22:1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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