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밭과 런던. 순간을 믿어요.


i. 로마에서 돌아오는 길, 일부러 런던에서 장시간 경유하는 표를 구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떠나는 길, 창 밖으로는 구름밭이 펼쳐졌다. 천국을 모티브로 한 종교화를 너무 많이 보고 오는 길이라서 그랬는지, 그 옛날 그들이 상상한 천국은 지금 보이는 저 구름밭보다 더 높은 곳의 모습이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ii. 그래서 또 내게 주어진 런던에서의 시간은 24시간 미만. 짧은 시간이었지만, 보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일을 해야했다.

비몽사몽 상태로 일을 해야했지만, 런던의 날씨는 너무나 화창했고, 이사한 오빠네 집에서 보는 템스강은 햇빛에 반짝였다. 틀어놓은 음악이 좋고, 넓은 창문 밖 풍경이 멋져서- 일하는 그 시간마저 행복했다. (그리고 7년에 걸친, 봄-여름-가을-겨울을 모두 포함한, 나의 여섯번째 런던 방문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상하게도 비오는 런던의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또 비가 온다'며 우울해 하는 오빠내외에게 건네는 내 농담-'그럴리가... 런던하면 화창한 날씨 아닌가?'-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게 오전 내내 일을 하고, 우체국에 가서 로마에서 만나지 못한 L에게 소포를 부쳤다. 대학원 시절, L이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모카포트로 물의 양, 불의 세기 등을 고려해서 끓여준 커피를 마시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그런 L을 만나게 되면 전해주려고 '카페 베로나'라는 이름을 가진 (이탈리아에 없다는) 스타벅스 커피를 사가지고 갔었는데, 로마에서 3시간 정도 떨어진 항구 도시에 사는 L을 일정상 만나기가 어렵게 되어 많이 아쉬웠었다. 대신 '카페 '베로나'라니... 아이러니하지? 이탈리아 커피를 더 appreciate 하게 되는 계기가 되길!' 하는 메모를 써서, 소포를 보냈다. (얼마전 L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며 인증샷을 찍어 보내왔다.) 

공항으로 가기 전, 오빠가 점심을 먹자고 하여 새언니와 함께 오빠가 근무하는 회사로 향했다. 점심을 먹고 회사 앞, 타워 오브 런던에서 짧게 산책을 하고 헤어졌다. 오빠에게는 이 풍경이 일상이겠지? 일상이 되더라도 이 풍경은 어쩐지 진부해지지 않을 것만 같다. 그렇게 오빠의 일상 풍경을 많이 부러워 하고 왔다.

공항에 가기 전 시간이 조금 남아서 V&A 박물관으로 향했다. 날씨가 좋아 사람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고, 박물관 한켠에는 충견을 기리는 표시가 있었다. 이런 멋진 곳에 너희를 기리는 공간이 있다니, 행복한 강아지였구나, 하고 생각했다. 또 박물관에 있는 약탈해 온 전시품들이 생각났고 "Remember that you are an Englishman and have consequently won first prize in the lottery of life."라고 한 Cecil Rhodes의 다소 오만한 말이 떠올라 씁쓸해졌다.

다시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까지 햇볕이 참 따뜻했다. 그렇게 또다시 해가 쨍쨍한 런던의 모습을 뒤로 하고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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