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 순간을 믿어요.

(Marcus Aurelius <3)

i. ... Yes, I have finally arrived to this Capital of the World! I now see all the dreams of my youth coming to life. Only in Rome is it possible to understand Rome. -Johann Wolfgang von Goethe.

'영원의 도시' 로마에 드디어 닿았을 때의 감동은 굉장했다. 로마에 오기 전, 문화유산 (그것도 euro-centric 접근법에 치우쳐진) 공부를 했으면서 여지껏 로마를 아껴/미뤄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늘 마음 한 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어쩐지 '로마'였기에 더 완벽한 순간-나중-을 위해 아껴두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30세가 지나면서 그 '나중'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엔니오 모리꼬네 공연을 핑계 삼아 '드디어' 로마에 다녀오게 되었고, '로마'는 역시 '로마'였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로마에서의 닷새는 너무나 야속하게도 짧기만 했다.) 

ii. 문화유산을 공부하고, 관련 유적지에 찾아가 찬란했던 문명의 흥망성쇠의 흔적을 볼 때마다 느꼈던 것은 아름다움 보다도 주로 허망함과 (영원하지 않은 것들에서 오는) 비 존속성에 대한 쓸쓸한 감정들이었다. 그런데 '영원의 도시' 로마를 보고, 사그러져간 문명 속에서도 살아 남아 있는 것들이 현세대에 이어져 미치는 영향을 보고, 아니, 오히려 그들의 삶의 중심이 되는 것을 보고, 다른 의미의 '영원'을 보게 되었고 순간 전율이 일었다.  

iii. '저 문양은 혹시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요?'
길거리에 무심하게 그려진 아무 문양이나 가르쳐도 이야기가 풀어져 나왔다. 로마에 20년 째 살고 계신다는 (-그리고 진정한 'Roman'이 되려면 적어도 7세대가 로마에 거주해야 한다며, 본인은 Roman이 될 희망이 없다며 슬프게 고개를 저으시던-) 워킹투어 가이드분은 '저 문양은 나폴레옹이 침략했을 때- " "저 곳은 무솔리니가..." "이곳에서 옥타비아누스가..."하고 끝없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이쯤되니 어느 돌멩이 하나도 허투루 지나칠 수가 없었는데, 내 어리석고 조급한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갑자기 세차게 소나기가 쏟아져 내렸다. 덕분에 우리 그룹(-워킹투어 가이드 이탈리아 분, 캐나다 여자 분, 독일 커플, 그리고 나-)은 Porticus Octaviae 맞은편에 서서 한참이나 비를 피해야 했는데, 빗소리와 함께 로마 유적을 그렇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순간이 무척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 또한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다.

iv. 떠나기 전 날에는 대학원 동창 M을 무려 5? 6년?만에 만났다. 두 달 전, 로마의 직장으로 이직하여 바티칸 근처에서 살고 있다는 M은 내 깜짝 방문에 놀라며, 투어가이드를 자청하여 로마의 골목골목을 구경시켜 주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이지만,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음, 많은 일들이 있었어.'라는 게 우리의 catch up 대화의 전부였고, 마치 어제 본 듯 하였다. 한없이 나이브해서 행복했던 대학원 시절을 간간히 회상하긴 했지만, 우리는 지나간 시간보다 현재를 더 많이 이야기하였고, 그렇게 해가 지는 로마의 골목길을 젤라또를 먹으면서 오랫동안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역시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독일에서 이탈리아인인 M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유적에 둘러싸여) 이탈리아에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이야?'라고 물었었고, (로마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베를린 거리를 언제나 황홀해하며 걷던 나를 M은 신기하게 보곤 했다. 이번에 만났을 때도 나는 또 같은 질문을 했는데, M은 '음, 산책하다 우연히 한 성당에 들어갔는데 카라바조의 작품을 마주했어' 라며 웃었다. (정말이지, 부러워서 졌다..)

여전히 착하고, 매너있는 좋은 친구 M. 나이를 먹어가며 우리 모두 현실적 고민들을 매일 마주하며 살고 있지만, 그 모습 변치 않고 건강하게 잘 살다가, 어디가 되었든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덧글

  • 2018/07/02 00:5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7/02 21:2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