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일. rambling.


i. 점심을 먹고 잠깐 우체국에 다녀오는데, 어디선가 엄청난 함성이 들렸다. 그대로 멈춰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는데, 어린 학생들이 줄지어 오면서 목청껏 구호를 외친다. 그러고 보니 몇몇 학생들의 얼굴이 낯익다. 지난 며칠 동안 CNN 인터뷰에서 여러 번 본 얼굴들- 그들은 멀리 플로리다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대부분은 맨발이었고, 목소리에는 분노와 울먹임이 묻어 있었다. 나처럼 지나가던 사람들은 모두 멈춰 서서 그들을 격려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또 지나가던 차들은 함께 경적을 울리며 그들을 응원했다. 나는 가만히 서서 보고 있었는데, 어쩐지 눈물이 나왔다. 아직 많이 어리고 체구가 작은 학생들을 보며, 과연 몇 살이나 되었을까 생각했다. 왜 그들이 애초에 지금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왜 평생 지우지 못할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동/청소년 보호에 대한 관심이 그 어디보다 높은 이곳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면이다.

고등학교 시절, 지역에 스나이퍼가 나타나 모두를 공포에 몰아넣은 적이 있었다. 범인이 잡힐 때까지 모두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일상을 이어나가야 했다. 대학생 때는 지인들이 많이 다니는 대학에서 엄청난 총기사건이 있었다. 그 외에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숱한 사고들. 그런데 과연 이번에는 긍정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알 수 없다.

ii. oxfam/doctors without borders/un peacekeepers의 스캔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고, Ghouta의 사람들은 국제사회가 그들을 버렸다며 울부짖는다. 벌어지는 일들을 보며 또다시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생각하게 된다. 만약 존재한다면 인간 사회에 관심이 없는 걸까. 알 수 없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여전히 습관적으로 작게 성호를 긋게 되는 내 자신의 마음도-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이 존재하길 바라는 내 마음도- 알 수 없다.

iii. 우체국에 갔던 것은- 친한 친구가 얼마 전 출산을 해서 작은 선물을 부쳐주러 갔던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지난 반년 사이에 임신/출산 소식을 알린 친한 사람들이 여섯 명이나 된다.) 부모가 된 이들 모두는 아기가 살아갈 세상이 더 아름답길 진심으로 바라며 노력하는, 책임감있는 좋은 어른들이다. 이들의 마음과 노력이 모두 모여,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은 일어나지 않고, 그렇게 세상의 많은 것들이 차근차근 제자리를 찾아갔으면 좋겠다.





덧글

  • 2018/02/23 02:5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2/23 09:2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밤은 노래한다 2018/05/02 01:11 # 답글

    미국사회를 공부하면서 접하게 되는데 이번 총기사건에 대한 학생들의 시위를 보니 저도 울컥하더라구요.. 죽은 아이들을 보면 참 신이라는 것과 삶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 iris 2018/05/04 02:05 #

    정말 그래요. 그런데 이렇게 비극적인 일들이 되풀이 되어도 아직 건설적인 변화가 없다는 게 참... 아직 갈 길이 참 먼 것 같아요. 많은 죽음이 그렇지만, 이런 식의 허망한 죽음은 납득하기가 정말 더더욱 어렵죠...
  • 지성의 전당 2018/09/14 16:11 # 답글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신에 대한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 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

    수천 년간 어느 누구도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과 질문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어떤 존재라 할지라도 ‘존재’에게는 반드시 ‘시작’이 있었으며, 그러한 태생적 한계는 반드시 ‘끝’으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과 의문은, ‘신’을 추측하고 상상하여 존재적인 측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추측과 상상으로 만들어진 ‘신’에 대해서 묻고 있다면, 저의 견해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겠습니다.


    (질문) 그렇다면 ‘신’을 부정하시는 겁니까?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은 ‘존재’하지만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듭 말씀 드리지만 어떤 존재라 할지라도 ‘존재’에게는 반드시 ‘시작’이 있었으며, 그러한 태생적 한계는 반드시 ‘끝’으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시작이 시작되기 이전에 ‘아무것도 아닌 무엇’, 즉 존재를 존재하게 하는 알 수 없는 ‘무엇’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무엇’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가능케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은 아무것도 아닌 무엇으로서, 존재하지만은 않습니다.


    www.uec2018.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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