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Train 1. - Patti Smith.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Not a depression, more like a fascination for melancholia, which I turn in my hand as if it were a small planet, streaked in shadow, impossibly blue.

... -Where do you think the compass points for our next meeting? I asked.

... Not all dreams need to be realized.

... The mist grew heavier, a full-blown fog, enveloping all we passed. What if it suddenly lifted and everything was gone? ... All disappearing into the silvered atmosphere of an interminable fairy tale.

... A thick torpor coupled with a surprisingly internal luminosity gave me the impression I had been overcome with a numinous malady transmitted by the Berlin and the London fog. My dreams were like outtakes from Spellbound: liquefying columns, straining saplings, and irreducible theorems turning in a swirl of heart-stopping weather.

... Anxious for some permanency, I guess I needed to be reminded how temporal permanency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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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 한 문장이 아름다워서 아껴 읽어야 할 것 같고, 그래서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섣부르게나마 지금 느끼는 감정을 남기고 싶어졌다.

패티 스미스가 추억하는 베를린과 런던의 풍경과, 그녀의 단어 하나하나가 소환시키는 내 기억들을 잡아두고 싶다. 

i. 첫 번째는 베를린과 런던의 안개. 그 안개에 취해 아파본 그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과장일까. 

내 인생에서 두 장소에 엮어있는 시간들은 아마도 제일 깊고도, 화양연화와 같은 아름다운 시절이겠지만, 두 장소는-특히 베를린은- 언제나 회색빛으로 내 기억에 자리한다. 그것은 장소가 품고 있는 역사도 한몫하겠지만- 역시 안개의 강렬함이 클 테다. 


평범한 어느 날, 이른 아침부터 혼자 거리를 배회한 적이 있다. 유독 안개가 짙은 날이었고, 그 날따라 거리는 무척 한산했고- 동독의 랜드마크인 TV타워마저 안개에 가려 그 모습을 희미하게 내보였었다.


나는 안개 속에 묻혀 한참을 걸었고, 2차대전 때 폭격을 맞아 앙상하게 골자만 남은 어느 교회에 다다랐고, 그곳에서 한참을 서서- 안개가 조금씩 걷히는, TV 타워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들을, 어쩐지 매우 경건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 순간들은 베를린에 대한 내 기억 속 풍경을 지배하는, 참으로도 강력한 잔해로 남아있다. 

그녀가 안개에 묻혀, 취해있던 시간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ii. 그리고 두 번째는- 그녀가 찾은 카페.
그곳은 베를린을 떠나기 전날 엄마와 우연히 방문한 곳이었다.

어찌어찌하여 mit Auszeichnung으로 졸업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엄마는 크게 기뻐하시며 이곳에 와서 남은 며칠을 보내고 짐을 싸서 같이 돌아가길 원하셨다. 당시 엄마는 한켠으로, 그러한 성과를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축하하는 일종의 세레모니를 기대하셨던 것 같다. 미국에선 대학교 졸업식은 말할 것도 없고, 고등학교 졸업식마저 사각모와 가운을 갖추고, 다른 부수적인 성과에 따라서 색색의 띠도 여러 개 두르고,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연주 속에 웅장하게 진행되니 그러실 만도 했다. 

아쉬워하는 엄마에게 논문 통과와 함께 이루어지는 개개인의 '졸업'과 같은 이곳의 시스템을 설명해 드리며, '배움에는 '졸업'이란 게 없어서 그런다나 봐요.'하는 말로,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여전히 엄마에겐 그 심오함(?)이나 그들의 실용성에 대한 이해보다, 휘황찬란한 졸업식에서 자랑스러운 딸의 사진을 찍어줄 수 없음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커 보였지만.)


그렇게 가을의 끝자락에 쓸쓸한 카페 밖 풍경을 앞에 두고, 그간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풀어놓았다. 나는 처음 혼자 낯선 땅에 도착했을 때의 그 먹먹함과 모험심을 기억했고, 엄마는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신혼생활을 회상하셨다. '그 때였다면, 지금 이 카페에 앉아있지도 못했겠네요.' 당시에는 동독에 해당되었을 그 카페에서, 엄마와 오래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오게 될까요...'라며 나름의 작별을 고한 곳을 이렇게 책으로 마주하니, 반갑기도 하고 또 그리움이 몰아쳤다.


iii. 그곳이 그리울 때면, 나는 반대로 내가 그곳에서 싫어했던 것들을 억지로 끄집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내, 그러한 억지 노력마저 달콤쌉쌀한 그리움으로 환원됨을 깨닫고 그만두기로 한다. 에드워드 호퍼는 '... it took me ten years to get over Europe.'이라고 했다는데, 나의 time frame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혹시 다시 돌아가지 않는 이상 영영 용해될 수 없는 것이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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