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소망. rambling.



i. 나이만큼의 나라를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기도, 살아보기도, 공부를 하기도, 일을 하기도, 봉사를 하기도 했던 경험은 내가 감사하고, 소중히 여기는 자산이다. 오롯하게 나의 것이 된 그 경험들. (반면 그 시간 속에서 내가 느낀 다양한 강도와 형태의 기쁨과 슬픔 등의 감정들을 타인에게 온전히, 완벽하게 전달할 수 없다는 건 슬프고 아쉬운 일이다. 관계의 한계를 느끼는 부분도 바로 이것이고,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섬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무튼 그런 경험에서 얻게된 것은 정-말 다양한 유형(인종, 성별, 나이, 종교, 학력, 집안배경, 직업, 취미, 경제적 상황, (문화권에 따라) 신분, 성정체성 등)의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는 기회이다. 그러면서 습득하게 된 일종의 6th sense라고 (감히) 생각 되어지는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사람의 좋은 기운을 느끼는 감각이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느낄 수 있는, 그 사람이 지닌 선하고 좋은 기운과 깊이감. (물론 그 기운은 위에서 열거한 요인들 중 그 어떤 특정 요인과도 상관없이 발현되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에 있어서는 (아직까지는) 내 직감을 신뢰하게 된다. 아무리 수려한 외모에, 사회적으로 보기 좋은 조건들을 갖추고, 미사여구를 늘어놓아도 그 분위기와 기운이 느껴지지 않으면 어쩐지 내겐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건 아마 그 사람의 평소 행실과, 생각과, 가치관과, 차곡차곡 쌓아온 내공이 조화를 이루며 은근하게 자아내는 것으로, 결코 단시간에 쉬이 얻거나, 돈으로 사거나, 억지로 꾸며낼 수 없는 것 일테다.

며칠 전 교육을 받으러 간 곳에서 뵌 분에게서도 그런 좋은 기운과 깊이감이 단번에 느껴졌다. 입을 여시기도 전에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 나야 그저 멀찍이 앉은 수많은 청중 중 하나였지만,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 강의 내용은 정말 흥미로웠고, 그분의 단어 선택은 신중하고 간결했으며, 무엇보다 내내 유지하신 겸손함과 한결같이 경청하시는 태도가 인상 깊었다. (집에 돌아와서 어떤 분인지 더 알고 싶어 검색을 해 보았더니, 세계 최고라 불리는 대학들에서 공부 및 연구활동을 하신 분이셔서 한번 더 놀랐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내가 굳이 입을 열지 않고,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내가 가진 분위기와 태도로 사람을 감동, 매료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또 그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죽기 전에 누군가 내게서 비슷한 종류의 선하고 좋은 기운과 깊이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건 충분히 멋지고, 의미있는 삶이 아닐까, 하는.

그리고 내 삶을 돌아보니 마냥 부끄럽다. 내 자신이 더 말을 아끼고 깊이있는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 그건 아마 내가 평생을 두고 노력해야 할 부분일테다.

ii. 언젠가 가을에 교토에 갈 수 있길 소망한다. 작년에 책 사이에 넣어 두었던 단풍잎들을 보고, 가을이 더 빠르게 진해지길, 깊어지길 마음 속으로 바라보다, 버킷리스트 중 한 부분을 차지하는 가을의 교토를 떠올렸다. 특히 철학자의 길과 료안지. 료안지에 대해서는 대학원 수업에서 참 인상깊게 들었는데, 돌의 정원에서 느낀 아름다움과 절제된 미, 사색의 기회와 하얀 모래가 지닌 의미들을 꿈꾸는 표정으로 전달해 주신 독일인 교수님 모습을 보고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료안지는 그 학기말 구술시험에서 나와 재회하는 인연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곳을 가볼 기회는 아직까지 없었고, 난 여전히 꿈을 꾸게 된다. 언젠가는.


iii. Abbas Kiarostami 감독의 묘비.
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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