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호흡 - Ricardo Piglia.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제 1부 : 내가 어둡고 음울한 겨울이라면

<우리에겐 경험이 있지만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 의미에 다가간다면 경험을 되찾게 될 것이다.> - T.S.E.

... 외견상 그는 역사의 흐름을 일관되게 거스르면서 살아온 것처럼 보인단다. 다시 말해서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은 객관적인 역사의 운동 법칙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거지. 그의 삶에는 뭐랄까, 열정의 과잉 같은 것이, 혹은 유토피아적 앙금이 존재하고 있어. 그러나 ... 어떤 면에서 망명은 유토피아에 다름 아니란다. 망명자는 특히 유토피아적 인간이다. ... 왜냐하면 망명자는 미래를 끊임없이 그리워하며 살기 때문이다.

... 지난 수년 동안 과거의 조수에, 그리고 저 깊은 곳을 흐르는 물결에 나를 묶어두었던 사슬로부터 벗어나려고 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소. ... 거부한다는 것, ... 오직 거부를 위해 에너지를 소모하는 거죠. 내가 무모한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 깨달음은 순간이에요. 그런데 그 순간이 지나면, 내가 깨달았다고 믿었던 순간이 꿈이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런 환상이 우리 삶을 지탱해주긴 하지만 꼭 그걸 잃지 않으려고 애쓸 필요는 없어요.

... 편지는 그 자체로 유토피아의 형식이다. ... 왜냐하면 편지는 현재를 폐기함으로써 미래를 유일한 대화 공간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제 2부 : 데카르트

... 이제 모험 따윈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가 말했다. 이 세계엔 패러디만 있을 뿐이죠.

... 기존의 자리에서 벗어나 다른 곳에서 거리를 두고 존재하는 것, 그래서 익숙한 것들과 관습의 장막 너머에 존재하는 실재를 보는 것, 그게 바로 낯설게 하기의 핵심이 아닐까요?

... 언어는 자신의 육체가 되는 셈이죠. 그런데 난 글에서 내 육체의 그림자마저 지우려고 해요. 그러니 글 속에서 난 고작해야 공허한 언어, 바람으로 만든 텅 빈 언어만을 만들어낼 뿐이죠.

...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비트겐슈타인의 말이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차라리 침묵해야 한다. 이건 작품 속에서 카프카가 끊임없이 던진 질문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 그의 작품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그리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에 대해 굳이 말을 하려고 했던 유일한 작품입니다. ... 그러면 말할 수 없는 것이 대체 뭘까요? ... 그 세계는 언어 저 너머에 존재합니다. 언어의 철조망이 쳐 있는 경계선 너머에 존재하는 세계죠. 철조망, 허공에 걸린 철조망 위를 맨발로 걷는 곡예사. 그는 그 저머에 있는 세계에 대해 말할 수 있는지 알려고 애썼던 거예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진리의 담지자인 언어의 존재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모험입니다. ... 거짓과 공포로 가득찬 말로는... 삶을 그리 쉽게 드러낼 수 없는 법이지요. 반면 비트겐슈타인은 죽음과도 같은 침묵 속에서 분명하게 깨달아가고 있었어요. 자신의 생각과 가장 가까운 작품은, 미완성이지만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 카프카는 그 악몽 속으로 들어가 그것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서 매일같이 깨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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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작가의 분야를 넘나드는 방대한 지식과 내가 무지한 아르헨티나 역사에 대한 서술 부분은 읽기에 다소 버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관통하는 그의 문학의 역할에 대한 생각과 태도, 그리고 그가 독자의 몫에 기대어 허구 문학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모습은 정말 매력적이어서, 긴장을 늦추지 않고 흥미롭게 열심히 읽어 나갔다.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모색하고자 한 많은 것들은 범재인 내가 결코 모두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생각할만한 거리를 많이 던져주어 좋은 자극이 되었다. (더불어 이 책을 소개, 번역한 엄지영 번역가에게도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ii. '인용'으로 가득찬 타르뎁스키를 빌어 표현되는 내 상황과 태도가 많아 뜨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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