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Agota Kristof.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이제 어떻게 한다?"
"예전처럼 아침이 되면 일어나고, 밤이 되면 자고,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일을 하면 되는 거지."
"오래 걸릴 거야."
"어쩌면, 평생 동안."

... 잊어버리게. 인생은 그런 거야. 모든 게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게 마련이지. 기억은 희미해지고, 고통은 줄어들고. 나는 사람들이 어떤 새나 꽃을 기억하듯이, 내 아내를 기억하고 있지.

... 희미해지고, 줄어들고, 그래, 내가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네.

... 나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쓰려고 하지만, 어떤 때는 사실만 가지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바꿀 수밖에 없다고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고, 그럴 용기도 없는 나 자신이 너무 괴롭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미화시키고, 있었던 일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있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얘기를 쓴다고 했다. 그녀가 말했다.
"그래요. 가장 슬픈 책들보다도 더 슬픈 인생이 있는 법이니까요."
내가 말했다.
"그렇죠. 책이야 아무리 슬프다고 해도, 인생만큼 슬플 수는 없지요."

... "생각에 깊이 빠지기 시작하면, 인생을 사랑할 수 없어."
내 형제가 자기 지팡이로 내 턱을 들어올린다.
"생각하지 마. 저길 바라봐! 저렇게 아름다운 하늘을 본 적이 있어?"
나는 눈을 든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다.
"아니, 한번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어."

... "나도 저 바깥세상으로 건너가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어."
내 형제가 말했다.
"발견할 건 아무것도 없어. 너는 뭘 찾고 있는데?"
"너. 내가 다시 돌아온 것도 너 때문이야."
내 형제가 웃었다.
"나 때문이라고? 너도 잘 알잖아, 나는 단지 꿈일 뿐이라는 걸. 그걸 받아들여야 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어디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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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 이 소설에서 기술하고자 했던 것은 이별 -조국과, 모국어와, 자신의 어린 시절과의 이별-의 아픔이다. 나는 가끔 헝가리에 가지만, 어린 시절의 낯익은 포근함을 찾아볼 수가 없다. 어린 시절의 고향은 세상 어느 곳에도 없다는 느낌이 든다."라는 작가의 말.

ii. 비밀노트-타인의 증거-50년간의 고독으로 이어지는 소설. 인간의 존재와 정체성의 불확실성이 (아마도 헝가리의) 한 작은 마을에서 펼쳐진다. 책장을 넘길수록 격렬하고, 진해지는 모순-내가 무엇을 읽고 있는지, 누가 누구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내가 읽고 있는 것은 과연 진실인지-에 당혹감을 느끼며 홀린 듯 읽어나갔다. 거침없는 작가의 단어 선택과 표현력. 나치즘과 사회주의 체제 속 만연했던 거짓말. 거짓말과 진실의 경계는, 또 주인공들이 넘나드는 '국경'은 과연 어디/무엇일까.

iii. 읽는 동안 동유럽의 풍경을 계속 머릿속으로 그리다보니, 떠오르는 추억들이 많았다. 특히 프라하의 Cafe Louvre가 무척 그리워졌다. 그곳에서 함께 농담을 하거나 그림을 그려줬던 친구들도.

또 세 번째로 그곳을 찾았을 때 하염없이 몇 시간이나 혼자 거닐던 거리도, 아무렇게나 첩첩이 세워진 수많은 비석들로 기억되는 유태인 묘지와 아픔과 미움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synagogue를 방문 후 한없이 차가워진 머리와 몸을 녹이려 들어간 카페에서 마셨던 따뜻한 커피도- 흩뿌리는 비를 맞으며 세체니 다리를 건너던 부다페스트에서의 밤도- 모두모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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