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세계: 알베르 카뮈의 여정.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우리가 내지르는 고함소리 하나하나는 가없는 공간 속으로 사라지고 날아가버린다. 그러나 그 고함소리는 여러 날을 두고 바람에 실려가 마침내는 육지의 평평한 어느 한끝에 닿아 어디선가 눈 덮인 조개껍데기 속에 틀어박힌 채 길 잃은 한 인간이 그 소리를 듣고 반가워서 미소 짓고 싶어질 때까지 얼어붙은 암벽에 가 부딪히며 오래오래 울릴 것이다.

... 내가 죽고 난 뒤에도 이곳은 여전히 충만함과 아름다움을 골고루 나누어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도 전혀 쓰라린 느낌이 없다. 오히려 감사와 숭앙의 감정이 솟는다.

... 거기서 우리는 밤이 내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산맥으로부터 이 찬란한 대지 위로 내려 쌓이는 어둠이 더없이 냉혹한 사람의 가슴도 느슨하게 풀어주며 어루만지는 그런 시간이었지만 나는 골짜기 저쪽 편에서 형편없는 보리떡 한 개를 앞에 놓고 둘러앉은 사람들에게 평화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또한 알고 있었다. 그토록 놀랍고 그토록 장엄한 그 저녁 빛에 빠져드는 건 감미로운 일이지만 우리의 눈앞에서 발그레한 불씨를 지피고 있는 그 가난은 세계의 아름다움 위에 무슨 금지령 같은 것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 거창한 모뉴먼트의 아름다움에는 항상 어떤 속박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그래도 그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고, 아름다움을 원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속박을 원할 수는 없음을 아는 것은 정말이지 기이하고 참을 수 없는 확실성이다.

... 건축가들이 조화로운 척도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깜짝 놀랄 만큼 기상천외한 곶, 광대한 만에 던져진 섬들, 소용돌이치는 넓고 넓은 소라고둥 같은 하늘을 노련하게 활용한 아크로폴리스의 기막힌 대담성 앞에서 다시 한번 환희의 기쁨을 맛본다. 그들이 건설한 것은 파르테논 신전이 아니라 광란하는 원근법 속에 펼쳐놓은 공간 그 자체다.

... 까마득히 먼 곳까지 올리브나무들이 잿빛으로 뒤덮고 있는 이 평원은 폭이 십 킬로미터가 채 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규모가 너무도 아득하고 산과 바다의 조망이 너무도 광활하여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는 가장 드넓은 왕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이런 장소들이 짊어질 수 있는 것은 오직 특정한 사상들뿐이다. 이런 장소들은 인간으로 하여금 따르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도록 권한다. 이런 장소들을 보면 조여오던 가슴도 이내 자신의 가장 깊은 욕망을 향하여 침잠한다. 뭐라고 형언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욕망, 인간의 삶을 지속시키고 그의 지배력을 드높이는 욕망.

... 인간이 그의 생활로 되돌아가는 이 미묘한 순간에 시지프는 자기의 바위를 향하여 돌아가면서 서로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이 행위들의 연속을, 그 자신에 의해 창조되고, 그 자신의 기억의 시선 아래서 통일되고, 머지않아 죽음에 의해 봉인될 그의 운명이 되는 이 행위들의 연속을 응시한다. 그렇게, 인간적인 모든 것의 근원은 전적으로 인간적인 것임을 확신하면서, 보고자 원하되 어둠은 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눈먼 시지프는 지금도 여전히 걸어가고 있다. 바위는 또다시 굴러간다.

... 정의를 실현하려는 요구가 오래가면 그것을 낳아준 사랑을 메마르게 한다.

... 인간에 대한 그 어떤 훼손도 일단 저질러지고 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인데 정작 그 어떤 승리에도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는 확신...

... 기억하는지요. 어느 날 당신은 분격해하는 나를 놀리면서 말했습니다. "파우스트가 이기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돈키호테 따위는 상대가 안 됩니다." 그 말을 듣자 나는 당신에게, 파우스트와 돈키호테는 어느 쪽이든 상대와 겨루어 이기기 위하여 만들어진 인물이 아니라고, 그리고 예술은 세상에 악을 가져오기 위하여 고안된 것이 아니라고 말했지요. 그러자 당신은 좀 의미심장한 이미지를 빗대어서 말해보고 싶은지 이렇게 말을 이었어요. 햄릿과 지크프리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 당시 나는 선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어요.

... 지리상의 한계가 정신의 한계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그렇다. 프랑코가 유네스코에 들어간 순간, 그 즉시 유네스코는 세계 보편 문화 밖으로 나가버렸다. 진정한 문화는 진실을 먹고 살고 거짓을 먹으면 죽는다. 사실 진정한 문화는 언제나 다른 곳에, 궁전이나 유네스코의 엘리베이터들에서 멀리 떨어진, 마드리드의 감옥들에서 멀리 떨어진, 모든 추방의 길들 위에 살고 있다. 문화가 사는 곳은 언제나,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사회, 전체주의자들의 잔혹함과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의 비겁함에 반대하고 프라하의 재판과 바르셀로나의 처형에 반대하며 모든 당을 다 인정하지만 오로지 하나의 당인 자유에 봉사하는, 창조자들과 자유인들의 사회다.

... [도스토옙스키]의 비극적인 희망은 겸허함에 의하여 모멸을, 포기에 의하여 니힐리즘을 치유하는 것이다.

... 오늘날엔 비극마저도 집단적이다.

... 한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재산을 평가하는 기준이 토지의 평수나 금덩어리의 무게에 있지 않고 일정 수의 교환 행위에 관념적으로 부합하는 숫자에 있게 될 때, 지배계급은 동시에 어떤 종류의 기만을 자기들의 경험과 세계의 중심으로 삼기 마련입니다. 기호에 바탕을 둔 사회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육체적 진실이 기만당하는 인공적인 사회입니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이 사회가 형식적 원칙들의 윤리를 선택하여 그것을 종교로 삼으면서, 자기의 금융 신전이나 감옥에다가 자유와 평등이라는 구호를 무차별적으로 써붙여놓는다한들 그것을 보고 너무 놀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을 함부로 쓰면 반드시 벌을 받는 법입니다. 오늘날 가장 크게 욕된 대접을 받고 있는 가치는 분명 자유일 것입니다.

...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 길을 잃지 않기, 세계 속에 잠들어 있는 자기의 것을 잃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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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사랑하는 작가인 카뮈.

요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밑을 걷다 문득 카뮈의 알제리도 이랬을까, 하고 상상해 보곤 했는데, 그러다 카뮈의 딸 Catherine이 카뮈의 생애를 공간적으로 묶어 글과 사진 등을 통해 그의 여정과 가치의 발달과정을 차근차근 보여주는 이 책을 우연히 만났다. 그는 작품 밖에서도 행동하는 지성인이었고, 고민하는 이방인이었으며, 인생의 부조리함과 무의미함에 대한 답을 인간적 사랑에서 찾고 극복하려 했던 세계인이었다. - 정말 알면 알수록 멋진 사람이다.

그가 살던 시대상과 시대정신을 그의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접하면서- 그의 자연에 대한 끝없는 예찬이, 문화와 예술에 대한 애정어린 고백이, 인간에 대한 (아직 남아있는) 믿음이- 읽는내내 마음을 울렸다.

또- Brexit Referendum을 앞둔 요즘, 그가 1950년에 논의한 포인트들은, 국제 연대의 중요성은, 아직 너무나도 유의미하다.


+ 너무나도 가고싶었던 (역시 너무 좋아하는) Viggo Mortensen의 The Human Crisis 낭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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