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숫자 - Wisława Szymborska.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60억의 사람들.
내 상상력은 늘 그랬듯이 언제나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다.
거대한 숫자는 감당하지 못하고, 
사소하고, 개별적인 것에 감동을 느낀다.
어둠 속에서 손전등 불빛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가장 앞줄에 서 있는 얼굴들만 닥치는 대로 비추곤 한다.
그럴 때 뒷줄에 있는 나머지 얼굴들은 모조리 생략되고 만다.
기억 속에서도, 회한 속에서도 그들은 영원 속으로 도태되고 만다.
저 위대한 단테조차도 그들의 소멸을 멈출 순 없다.
모든 뮤즈가 함께 어울려 내게 끊임없이 영감을 불어넣는다 해도
존재를 상실한 그들을 위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으랴.

Non omnis moriar- 시기상조에 불과한 근심 걱정.
정녕 내가 온전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것으로 충분한지.
단 한순간도 충분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고, 지금은 더욱더 그러한데.
뾰족한 수가 없기에 끊임없이 버리면서 선택한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버렸으니
그만큼 복잡하고, 그만큼 성가시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상실한 대가는 
고작 시 한 구절과 한숨뿐.

천둥과 같은 우렁찬 부름에 나는 꺼져가는 속삭임으로 간신히 대답한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침묵 속에서 견뎌야만 했는지, 굳이 말하지 않으리라.
고향 산기슭에서 찍찍대는 생쥐 한 마리,
인생이란 결국 그 생쥐가 모래 위에 발톱으로 끼적거린
몇 개의 희미한 흔적과도 같은 것.

나의 꿈들-꿈속의 인구 밀도는 생각보다 낮은 편이다.
사람들의 무리나 시끌벅적한 소동보다는 텅 빈 고독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그 사람은 하나밖에 없는 손으로 문고리를 돌린다.
메아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빈집에 울려 퍼지고,
현관을 넘어 계곡으로 흩어져간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니고, 그 어느 시대의 것도 아닌 듯
아주 조용하고 또 은밀하게.

무엇 때문에 이 공간이 내 안에까지 비집고 들어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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