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예보의 첼리스트 - Steven Galloway.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그의 기억 속의 사라예보는 하루하루, 마치 양손바닥에 떠낸 물이 새듯 조금씩 새나가고 있다. 그게 다 새나가면 뭐가 남을지 그는 궁금하다. 예전의 삶은 어땠고, 아름다운 도시에 산다는 게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 할 수 없다는 것. 과연 그런 삶은 어떤 것일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처음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그는 기억 속의 도시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가능한 한 원래 모습 그대로 마음에 간직하기 위해 노력했다. 건물을 보면 옛날 모습 그대로 보려 했고, 아는 사람을 봐도 바뀐 겉모습과 행동은 무시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기 시작했고,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심지어 마음속에서도, 더이상 도시의 소멸에 저항하고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주위에 보이는 것만이 단 하나의 현실이었다.

... 주위의 모든 것에 독특한 잿빛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이 잿빛이 어디서 왔는지, 아니면 늘 그곳에 있었는데 전쟁이 그것을 가리고 있던 다른 색채를 벗겨낸 것뿐인지, 혹은 이것이 바로 전쟁의 빛깔인지는 알 수가 없다. 어느 쪽이든 간에 그 빛깔은 거리 전체에 황량함을 던지고 있다.

... 이게 바로 삶이 찾아오는 방식이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한 번에 조그맣게 하나씩. 그 어느 하나만으로는 구원이나 재앙에 이를 수 없는 사소한 갈림길의 연속. 한 사람이 인간 전체를 규정할 만한 행위를 수행하거나, 수행하지 않는 위대한 순간 따위는 없다. 얼핏 그래 보이는 순간들만 있는 것이다.

... 그의 생각도 그렇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그곳에서 겪었던 일엔 어떤 의미가 있었고, 사람들이 그 일로부터 교훈을 배웠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죠.

... 그는 느낀다. 그가 여기 서서 길을 건너기 위해 계속 기다리고 있는 한, 저들이 이기고 있는 것임을. 이젠 시간이 됐다. 이 교차로를 통과해 어디든 간에 끝을 향해 가면, 그의 하루, 그의 삶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그는 누굴 위해 연주하고 있는 걸까요?
- 자기 자신을 위해서 연주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 아마 할 줄 아는게 그것밖에 없을 테고, 그러니까 뭔가를 이루어내겠다고 그러고 있는 건 아닐 겁니다.

... 상황이 악화되는 걸 막아줄 수 있는 게 단 하나 있다면, 그건 아마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하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 언덕 위의 저들은 그녀를 미워할까? 아니면 자기들과 다른 그녀로 대변되는 어떤 관념을 미워하는 걸까? 그 다름 때문에 그 자신이나 저들에게 어떤 열등감 또는 우월감 같은 것이 생겨나고, 그래서 결국 모든 이의 잠재적인 행복이 위협당하는 건 아닐까? 그녀는 저들이 어떤 관념과 싸우고 있으며, 그 싸움에서 증오가 표출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저들도 그녀와 전혀 다르지 않다.

... 여기에도 괴물들이 있어. 악한 것에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자기들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 자들이지.

... 그가 살길 바란다면, 그가 살고 싶은 세계가 사라지는 걸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 음악은 그녀가 이것을 기억하기를 요구했고, 또 세상에 아직도 선한 것이 들어올 자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그녀가 확실히 깨닫기를 요구했다. 선율이 그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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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보스니아 내전 당시, Vedran Smailović는 죽은 자들을 기리며 그가 할 수 있는 일, 첼로를 연주했고, Susan Sontag은 사라예보로 달려가 '고도를 기다리며'를 무대에 올렸다.


ii. 작가는 너무나도 우아하고 섬세하게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또 인간애를 증언한다. 

읽는 내내 이 모든 것이 현재에도 얼마나 relevant 한지 생각했고, 계속 눈물이 났다. 어째서 과거의 아픔에서 뉘우치고 배우며, 이토록 자명한 사실과 가치들을 잊지 않고 좋은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운 일인지... 그럼에도 우리 주변의 애로, 케난, 드라간들을 이해하고 잊지않고,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는 노력을 해야함은...


iii.




덧글

  • 2016/03/14 01:5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3/16 19:2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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