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의 기억. 순간을 믿어요.


(사진은 구글 검색)


i. 우울하기 그지없던 겨울 하늘이 조금씩 걷히고, 무채색이 조금씩 파란색으로 변해갈 때면 모두들 거리로 나왔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많이, 파란 하늘을 만끽하고 싶었던 조급한 마음들이 모였다. 코트 깃 사이로 들어오는 아직 찬 공기는 애써 무시하면서. 그러다 급기야는 낮은 건물 옥상에 고운 모래를 깔고, 파라솔을 설치하여 저기 어디 바닷가 휴양지의 느낌을 나게 하는 바에 찾아가서 칵테일이나 radler를 시켜놓고 앉아있곤 했다. The sandy place. 물론 그 바엔 정식 이름이 있었지만, 우린 늘 'shall we go to the sandy place?'라며, 한 번도 그곳의 제대로 된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딱히 기억하기 어려운 이름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우린 그렇게 신발을 벗고, 일광욕을 즐기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신세한탄도 하고, 다가올 시험을 걱정하고, 또 단체로 중요한 축구 경기를 보러 가기도 하면서- 당시 우리에게 허용되었던 최대의 호사와 봄의 하늘을 누렸다.

오늘 그곳이 문득 떠올라, 관련 사진을 찾아보려는데, 원래 가게명이 도통 생각나지 않아 마침 whatsapp으로 대화를 나누던 S에게 물어보니, S 역시 기억해내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구글에 sandy place와 지역명을 한 번 넣어보니, ta da! 거짓말처럼 사진들이 펼쳐져서 웃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에게 그곳은 "the sandy place"였던가 보다.


ii. 그동안 읽어야지, 벼르고 있었던 Art Spiegelman의 Maus를 읽었다. 믿고 싶지 않은 인간의 잔혹함에 또다시 몸서리를 치다가, 익숙한 지역명들에 마음이 더 아파왔다. 영화로, 책으로 접했던, 또 내가 스스로 찾아가 본 곳들. 그리고 내 친구들과 그들의 부모님들이 아직 살고 있는 곳들. 

언젠가 D의 고향집에 놀러갔을 때, 상대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의 도시와 (그것을 중화하고자 하는 노력에서인지) 극도로 밝고 화려하게 페인트 칠한 건물들이 내겐 조금 어렵게 다가왔다. 언덕에 올라 도시의 전경을 바라보면서, D는 원색으로 더욱 과장되게 칠해져있는 건물들을 가리키며 비웃었다. 잊고 싶은 과거 위에 화려한 덧칠을 한 모습이 마치 싸구려 놀이공원의 모습 같다고. 


어차피 그 과거들을 간직한 건물들은 이미 오래전 허물어졌을 테고, 지금 알록달록 무지개색으로 치장한 건물들에 사는 이들은 그 안에서 과거와는 다른 형형색색의 꿈과 삶을 꾸려가고 있을 테다. 그런데- 나는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그 건물들 앞을 지날 때, 혹은 old town의 조용한 골목을 걸을 때, 무생물인 바닥의 돌들과 담의 벽돌 사이사이에도 그 과거의 기억들이 깃들어져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감지할 수 있는, 일종의 넋 같은 것을, 그 장소가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발 밑의 돌들이 내쉬는 기억의 숨 같은 것이. 아무리 부수고, 새로 짓고, 덧칠을 한다 한들, 여전히 남아있는 장소의 기억이란 게 있는게 아닐까 하고. 우리가 그것들을 모른체하고 살아가는 건...


iii. 또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를 읽고 있다. 말의 성찬에 가려진 것들을 아쉬워하며, 침묵하는 실체의 중요성을, 성스러운 침묵을 읽고, 배우고 있다. (실천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는 건 또 다른 문제이다.)

책에서 전하는 침묵이 지닌 충만함과, (Maus처럼) '말'로 꼭 전해져야 하는, 침묵해서는 안 될 것들이 '일체'되어 이루게 되는 균형을 갖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일까 생각한다.

장소의 무거운 기억을 조심스레 품에 안고 있지만, 동시에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머릿돌을 하나 놓을 수 있는 행위와 용기도 이와 궤를 같이 하는 것 같다. 굳이 애써 덧칠하지 않고, 부숴버리지 않고... 그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iv. 침묵의 세계를 읽으며 떠오른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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