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용재 오닐의 공감 & Youth. rambling.



... 자신의 괴로움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해 내는 예술. 그래서 예술 작품은 사람의 마음에 호소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음에 호소하기에 그 마음이 다른 마음으로 손을 내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 하지만 나는 내 감정, 나아가 인생 전부를 음악을 통해 표현하는 법을 알고 있다. 자신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행운아이다.

... 책임감이 없는 사랑은 신기루이고, 책임지지 않는 인생은 공허하다고 생각한다.




... I have to choose, I have to choose what is really worth telling: horror or desire? And I choose desire. You, each one of you, you open my eyes, you made me see that I should not wasting my time on the senseless fear...

... You were right. Music is all I understand.

... We are all extras. All we have is emotions... You say that emotions are overrated. But that's bullshit. Emotions are all we've g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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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영화를 본 시기가 겹치게 되었고, 또 공연도 다녀왔고, 오랜만에 간 성당의 성탄 미사 성가를 듣다 눈물이 나서- 요 며칠 계속 음악-인생에 대한 망상에 빠져있다.


i. 삶의 궤적을 떠올리다 보면 대부분의 주요 장면들이 음악으로 대변된다. 영화 제목- youth-에 따라 내 youth(-내 기준으로 대충 십 대 중후반에서 이십대 중반까지-)를 돌아본다.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쓰고 버스정류장에 서서 김동률의 노래를 하염없이 듣던 것, 이적의 스탠딩 콘서트 세 번째 줄 즈음에서 목청껏 UFO를 따라 불렀던 것, 친구들과 살짝 취한 상태로 계단에 앉아 RHCP의 Otherside를 불렀던 것, '거짓말 같은 시간'과 '바람이 분다', 또 '내게'로 마음을 다독이던 것... 이외에도 수많은 노래와 장면들이 스쳐가지만, 이들이 유독 떠오르는 건 (youth를 지나버린 듯한) 지금은 어쩐지 돌아갈 수 없는, 다시는 오지 않을 밀도 높은 순간과 감정(+체력...) 때문이다.


ii. 성당에 들어서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성가는 아름답다. 성가를 듣다 (목이 메어 따라 부르기가 어려웠다) 까닭없이(?) 눈물이 계속 나왔다. 어디부터 반성을 해야할지 몰라 힘들었다. 미사 내내, 겸애, 소통, 공명을 생각했다.

또 9년 전 파리 노틀담 성당에서 드렸던 성탄 미사를, 5년 전 야자수가 즐비한 따뜻한 플로리다에서의 성탄 미사를 떠올렸다. 그때는 가족이 모두 함께 했고, 파리는 평화로웠고, 플로리다에서는 미사를 드리며, 쿠바가 이렇게 가까운데 가기 어려움을 애석해했다. 올해 성탄 미사는 혼자 보았고, 파리는 여전히 아픔을 간직하고 있고, 미국-쿠바 관계는 호전되고 있다.


iii. 앞으로의 나날도 많은 음악으로 점철될 수 있었으면 한다.


iv. 16살쯤, 죽는 순간에 함께 하고픈 음악을 처음 떠올렸었다. 그 후 곡은 몇 번 바뀌었지만, 여전히 원하는 음악을 온전히 향유하며 죽음을 맞을 수 있다는 건 축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v. 루시드 폴이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썼다는 천사의 노래를 자주 듣는 요즘이다. (생각난 김에 빔 벤더스의 신작 everything will be fine을 봤다.) 가사를 새겨 들으며 Damiel을 떠올린다. 노래를 듣다 미선이 1.5집도 다시 꺼냈다.



덧글

  • 2015/12/30 17:2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12/31 19:1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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