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중순. rambling.



i. A가 소식을 전해왔다. 각자의 삶에 집중하여 일 년에 다섯 번의 연락이 오갈까 말까 하고, 얼굴 보는 건 몇 년에 한 번꼴이지만, 언제라도 연락하면 기꺼이 하던 일을 멈추고 마중을 나가고, 이어질 우리의 대화는 분명 즐거울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인연이다.

그간 육아로 많이 바빴을 A인데, 새로운 곳(-내겐 아련함으로 남아있는 곳-)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혹시 이곳에 와 본 적 있니,'하는 A의 메일에, 머문 시간이 채 10시간도 되지 않았던 그곳이 떠올라 무척이나 그리워졌고, 동시에 A가 살아갈 새로운 풍경 속 날들에 나도 괜스레 설렜다.


ii. ...That soul-destroying, meaningless, mechanical, monotonous, moronic work is an insult to human nature which must necessarily and inevitably produce either escapism or aggression, and that no amount of "bread and circuses" can compensate for the damage done – these are facts which are neither denied nor acknowledged but are met with an unbreakable conspiracy of silence – because to deny them would be too obviously absurd and to acknowledge them would condemn the central preoccupation of modern society as a crime against humanity.

The neglect, indeed the rejection, of wisdom has gone so far that most of our intellectuals have not even the faintest idea what the term could mean. As a result, they always tend to try and cure a disease by intensifying its causes. The disease having been caused by allowing cleverness to displace wisdom, no amount of clever research is likely to produce a cure. But what is wisdom? Where can it be found? Here we come to the crux of the matter: it can be read about in numerous publications but it can be found only inside oneself.

[The insights of wisdom]... enable us to see the hollowness and fundamental unsatisfactoriness of a life devoted primarily to the pursuit of material ends, to the neglect of the spiritual. Such a life necessarily sets man against man and national against nation, because man's needs are infinite and infinitude can be achieved only in the spiritual realm, never in the material. - "Small is Beautiful", Ernst Schumacher


iii. 앞날을 그려보다, 막연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 참아내는 삶을 사는건 역시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iv. 블로그에 글을 적는건 전적으로 나를 위한 기록이지만, 일상을 적는건 역시 조심스럽다. 누군가의, 혹은 누군가와의 일은 결국 상대방, 그리고 나만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이걸 써도 되나, 망설이게 된다. (배려가 아닌 예의 차원에서라도.)

그렇다고 순전히 내 얘기를 쓰는게 쉬운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사실 별 내용도 없을테니) 난 이때 이런 생각을 했구나, 끝. 이런 식의 가벼운 기록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기록이 지닌 무게감이 어렵게 느껴진다. 과거는 언제라도 자의로/타의로 재평가가 가능하고, 현실을 논하기엔 경솔함에 대한 두려움이 먼저 앞서고, 감히 예측불허한 미래에 대해 얘기하기엔 내 좁은 시야와 가변성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러다보니 한낱 나를 위한 기록들마저도 갈수록 애매모호해져만 간다.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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