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중순. rambling.




i. 하루하루 정신없이 지나가는 일과라든지, 오랜만에 날 보러 아주 멀리서 와 준 친구라든지, 그도 아니면 도르트문트를 떠나는 클롭 감독이라든지- 얼마든지 의식적으로 정신을 분산시킬 일들은 많다. 좋은 사람들 가운데서 양 볼이 당기도록 웃는 일들도 분명 있고, 좋아하는 날씨에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하고 생각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배려와 아름다운 행동에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어쩐지 마음이 무겁다. 마음을 한없이 가라앉게 하는, 4월 중순의 그런 날.



ii. '체르노빌의 목소리: 미래의 연대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를 결국 다 읽지 못했다. 마음이 아파서. 중간즈음에서 손을 놓았다.


... 내가 무력하다는 것을 그곳에서 깨달았다.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나의 무력함으로 인해 무너져간다. 모든 것이 변한 세상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에 무너져간다. 그 세상에는 악조차도 달라질 것이다. 과거는 이제 나를 보호하지 못한다. 위로하지 못한다. 그 안에 답이 없다. 예전에는 항상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나를 파괴하는 것은 과거가 아닌 미래다. ... 왜 사람들은 기억할까? (본문 중) 



dark tourism (http://edition.cnn.com/2015/04/14/travel/chernobyl-tourism/index.html)이라든지, unbequeme Denkmale(http://www.nytimes.com/2015/04/16/arts/international/at-auschwitz-birkenau-preserving-a-site-and-a-ghastly-inventory.html?_r=1)이라든지, 의식적으로 그런 것들을 찾고, 기억하는 것이 남아있는 자의 도리라고 생각해왔는데, (그래서 이 책도 써졌겠지만)- 나의 그러한 행위들이 아직 그 시간을 살고 있는 자들에게 아픔일지, 위로일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을 경우, 그저 섣부른 관심으로 비춰져 오해의 소지가 될 뿐.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기억해야한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iii. 출근을 하다 becoming complacent 와 getting comfortable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하는 망상에 빠졌다. 

그것들을 방지하기 위해, 외적인 그 무엇에도 '너무' 익숙해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그렇게 중요한 것들을 하나 둘씩 놓아버리고 어떠한 다음 단계에 닿았을 때 과연 더 행복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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