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들 - Winfried Georg Sebald.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파괴의 시간이 지나간 뒤에 그 사람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침묵하고, 모든 것들을 감추고, 때로는 실제로 잊어버리기도 했는지요. 


... 파울은 사진 아래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우리는 항상 이천 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하지만 어디로부터? 시간이 흐를수록, 하루가, 한시간이, 한번의 맥박이 지나갈수록 모든 것은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었고, 아무런 특색도 없는 추상적인 것들로 변해갔다.


... I often come out here. 외삼촌이 말했다. It makes me feel that I am a long away, though I never quite know from where.


... 외삼촌은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심연에서 길어올린 회상들을 아주 느릿느릿 이야기했는데, 지극히 사소한 것들까지도 놀랍도록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더구나. ...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외삼촌에게는 고통이기도 했고, 자신을 해방시키려는 시도이기도 했지. 말하자면 구원이자 가차없는 자기파괴이기도 했던 거야. 


... 그는 나중에 이런 글귀를 추가했다. 기억이란 때로 일종의 어리석음처럼 느껴진다. 기억은 머리를 무겁고 어지럽게 한다. 시간의 고랑을 따라가며 과거를 뒤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끝 간 데 없이 하늘로 치솟은 탑 위에서 까마득한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 고통이 일정한 정도에 도달하면, 고통의 조건, 즉 의식이 사라져버리고, 그와 함께 고통 자체도 아마.... 우리는 그런 것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어.


... 하지만 시간은 믿을 만한 기준이 못될뿐더러 영혼의 소음일 따름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 이따금 나를 엄습하는 단편적인 기억의 영상들은 차라리 강박관념들이라고 해야 할 거야. 


... 사실을 말하자면, 지금도 그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였다고 자신할 수는 없네. 하지만 돌이켜보면, 당시의 일들이 내 삶의 구석구석까지 결정해놓았다는 느낌이 들어. 


------------


i. 기억을 더듬어 나지막이 이야기하는... 그들의 삶을 엿보는 것 같아서 읽는 내내 어쩐지 '실례합니다'라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황량한 이야기들.


ii. 지금의 나는- 미국에서는 이민자, 독일에서는 외국인, 한국에서는 이방인- 이라는 느낌이다. (그 세 가지가 어떻게 다른지 정확히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시간이 더 흐르고, 조금 더 성장한다면- 많은 시간들을 그 label들과 나를 분리한 채, 어설픈 실향의 먹먹함에 호소하지 않고 이렇게 담담하게 '내'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을까.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