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llaby for Pi. cinema paradiso.






12 monkeys가 드라마화 된다고 해서, Terry Gilliam의 12 monkeys를 보려고 틀었다가, 뭔가 달달한 것을 보고 싶어 이내 꺼버리고 Lullaby for Pi를 다시 보기로 했다. 조촐한 와인 파티를 위해 친구들이 사왔던 남은 치즈와 크래커를 먹으며 영화를 보는데 처음 봤을 때와 느낌이 사뭇 달랐다. (영화의 한 60% 후부터 짜임새와 조금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갈등조성 및 흐름이 조금 아쉬웠던 건 여전했지만..)


처음 봤을 때는 서로 소통을 하는 방식이나 아름다운 영화의 색채에 빠져 보게 되었지만, 이번에 보았을 때는 서로 위로를 하는 방식에 더 주목하게 되었다. 여전히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장면들이 있었지만, 글쎄- 이번엔 그 비현실성(?)에 괜한 괴리감을 느꼈던 것 같다. 플롯 상 특수한 상황이지만, 판타지같은 것과는 또다른 -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법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영화같은 요소'들이 마냥 아름답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괴리감을 느끼는 것이 감독의 역량(혹은 연기자들의 표현능력)과 관계가 있는건지, 아니면 받아들이는 내 자신의 문제인지 의문이 들었다.


아직도 다른이가 보기엔 늘 꿈에 젖어, '아름다운 영화'같은 삶을 꿈꾸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지만, 예전에 비해 스스로가 참 현실적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강도의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나름 이래저래 일에, 사람에 치어 살고, 또 자기만족 외에도 품위유지비 등을 운운하며 소비를 촉구하는 사회 속에 자연스레 종속되어 버리기도 하고,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스낵컬쳐'의 가벼움이 언젠가부터 나름의 guilty pleasure가 되어버렸다는 걸 알았을 때의 좌절감과 씁쓸함 속에서 환경을 탓해 보지만, 사실 그것에 훨씬 쉽고 빠르게 굴복한 건 내 자신의 탓이라는 걸 매일매일 깨닫고 있다. 그래서 조금은 막연하긴 해도 착실하게 출구와 대안을 찾아 계획을 설정하지만, 그 역시 꿈꾸는 유토피아가 될 수 없다. 그걸 감수하고 '또' 떠날 의향이 있는지,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영화를 보다보니...이 영화가 선사하는 위로의 방식이 꼭 희망으로 비춰졌기보다는,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충분히 좋은 영화였지만, 또 Rupert Friend의 보조개는 여전히 멋졌지만. 음. 지금은 루시드폴의 '알고있어요' 가사 정도의 위로가 제일 따뜻하게 느껴진다



blue valentine을 다시 볼 지, beginners를 다시 볼 지 고민 중이다.



+ 영화 밖의 세상. We are all... Fill in the Blank.

http://chomsky.info/articles/2015011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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