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 Albert Camus.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여러 주일 동안, 우리들은 같은 편지를 끊임없이 다시 쓰고, 똑같은 호소의 말을 다시 베껴 쓸 수밖에 없게끔 되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우리의 마음에서 솟아 나와 피가 뜨겁도록 흐르던 말들이 의미를 잃어버린 채 텅 빈 것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그러니 우리들은 기계적으로 그것들을 베끼고, 그 뜻이 죽어버린 말들로 우리의 고달픈 삶의 신호를 나타내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 평상시에 우리들은 누구나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사랑이란 예상 밖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또한 우리들의 사랑이 보잘것 없다는 것도 다소 담담한 태도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추억이란 더 까다로운 것이다.


... 만약 우리들 중 누가 우연히 자기 내심을 털어놓거나 모종의 감정을 말해도, 그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대답은 어떤 종류건간에 대개는 마음을 아프게 하는 대답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상대방과 자기가 서로 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었다. 사실 그는 오래 두고 마음속에서만 되씹으며 괴로워하던 끝에 그 심정을 표현한 것이었으며, 그가 상대방에게 전달하고자 한 이미지는 기대와 정열의 불 속에서 오래 익힌 것이었다. 그와 반대로 상대방은 습관적인 감동이나 시장에 가면 살 수 있을 상투적인 괴로움이나, 판에 박힌 감상 정도로 상상하는 것이었다. 호의에서건 악의에서건 그 응답은 언제나 빗나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단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 절망에 습관이 들어 버린다는 것은 절망 그 자체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 그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나야말로 나의 온 힘과 정신을 기울여 바로 그 페스트와 싸운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그 오랜 세월 동안 내가 끊임없이 페스트를 앓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 나는 내가 이 세상에 대해서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 죽이는 것을 단념한 그 순간부터 나는 결정적인 추방을 선고받은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나에게는 이성적인 살인자가 될 자질이 없으니까요. ... 다만 나는 지상에 재앙과 희생자들이 있으니 가능한 한은 재앙의 편을 들기를 거부해야 한다고 말하렵니다.


... 새로운 페스트 환자들이 생겼다 해도 통계 숫자가 내려가고 있다는 엄청난 사실에 비긴다면 별로 의미가 없었다.


... 애정을 알게 되었으며 언젠가는 그것에 추억을 갖게 되리라는 것. ... 인간이 페스트나 인생의 노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것에 관한 인식과 추억뿐이다. 타루도 아마 그런 것을 내기에 이기는 것이라고 말했던 모양이다.


... 그러나 내기에 이긴다는 것, 그것이 결국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단지 자기가 알고 있는 것, 추억에 남는 것만을 지니고 살아갈 뿐, 희망하는 것은 다 잃어야 되니, 그 얼마나 괴로운 일이랴. ...그런데 아무도 단죄할 권리를 인간에게 주지 않았던 타루, 그러면서도 누구도 남을 단죄하지 않을 수 없으며, 심지어는 희생자가 때로는 사형 집행인 노릇을 하게 됨을 알고 있었던 타루는 분열과 모순 속에서 살아왔던 것이며, 희망이라곤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 다른 사람들, 즉 집집의 문턱에서 기울어 가는 햇볕을 받으며, 서로를 힘껏 껴안은 채 정신없이 마주 보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바라던 바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면, 그것은 그들이 자기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만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리유는 그랑과 코타르가 사는 거리로 접어드면서, 적어도 가끔씩은 기쁨이라는 게 찾아와서 인간만으로, 인간의 가난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사랑만으로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보람을 주는 것은 정당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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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Camus (1913.11.7~1960.1.4)



... please, do poetical justice to your soul and simply experience your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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