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visited. rambling.





지난 3 주가 채 안 되는 시간동안 비행기를 8번 탔다. 몸과 정신은 시차적응을 포기한지 오래이고, 셀 수 없이 들이마신 커피 덕분에 아마 핏줄에선 카페인이 대신 흐르고 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참 좋았다.


지난 일 년이 넘는 시간동안 늘 머릿속으로 상상해 온 풍경이 있었다. 다시 가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금방 눈물이 날 정도로 그립고 그리운 풍경들. 그곳에 다시 가게 된다면.

그렇게 지난 일 년이 넘는 시간동안 늘 머릿속으로 상상해 온 풍경 속에서.


i. 모두 달려와서 꼭 안아주었다. 10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나를 만나러 와준 친구들, 이젠 약혼을 한 친구들, 또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친구들. 참 드물게 환상적인 날씨에 무얼할까, 하다가 동네 공원에 갔다. 반짝이는 햇살아래 누워서 시답잖은 농담을 하고, 옛 추억을 하나씩 꺼내어 풀어놓고, 지금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친구들의 짓궂은 질문에 고개를 저었고, 멋쩍게 웃었다. 친구들은 맥주를 마시고 나는 club mate를 마셨다. 한 친구는 소개시켜 주고 싶었던 남자친구가 사정이 생겨 오지 못했다며, 대신 물개가 그려진 카드를 선물로 전해주었다. 그러자 다른 친구들도 하나둘씩 '옛날에 네가 좋아했던 거'라면서 멀리멀리에서부터 챙겨온 선물들을 전해준다. 냉동해 온 전통 음식, 꿀, 초콜릿, 뜨개질한 가방 등등. 정말이지, 아아.


한참을 그렇게 일광욕을 즐기다 Spree를 거닐었다. 햇살에 강물이 반짝반짝. 마음도 행복감에 반짝반짝.


ii. 약혼한 친구커플은 깜찍한 메모와 집열쇠를 남기고 출근했다. 직접 만든 오렌지 주스와 라자냐, 그리고 레몬케잌이 식탁에 차려져 있었다. 여독이 가시지 않아 생각보다 일찍 일어나지 못했고, 아침 마중을 하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용기있는 결정을 한 친구의 새 보금자리는 참 쾌적하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건축을 공부한 커플답게 집안 곳곳에 센스를 발휘했고, 나는 특히 화장실의 동그란 창문이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 그 동그란 창문 밖으로 열심히 주변을 구경했다.


iii.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시간을 쪼개 사람들을 만나며 지난 기억을 되새기고, 또 새로운 추억을 만들었다. 학회 중에는 coffee break마다 명함을 주고 받기보다는 잠깐이라도 친구들 얼굴을 보려고 뛰어나갔다 돌아왔고, 그렇게 대부분이 아쉬움이 가득한 짧은 만남들이었을지라도, 영화 boyhood 감상평을 나눴고, 여전한 꿈을 얘기하고... 참 좋았다.


iv. 피곤/잠/카페인에 취해 몽롱한 기분으로 앉아있던 레스토랑. TV에선 챔피언스 리그 경기(당연히 BVB) 중계를 해주었고, Reus는 또 정말 멋진 골을 넣었다.


v. 흩뿌리던 가을비와 찬 바람. 어쩌다보니 24시간 중 19시간 정도를 늘 누군가와 함께 있게 되었지만, 혼자 그 곳을 음미할 시간이 내겐 정말 절실했다. 그래서 무리해서 일찍 일어나거나 조금 더 늦게 잠자기를 택하고, 김동률/로이킴/손성제/윤덕원을 들으며, 어쩐지 차가운 가을비에 을씨년스럽게 느껴지는, 그러나 하나하나 추억으로 새겨진, 그 길들을 혼자 걸으며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맞이했다.


vi. 너무나도 보고싶은 얼굴들을 보았고, 궁금했던 소식들을 들었고, 무엇보다 꼭 알고 싶어했던 것에 대한 답을 얻었다. 내 판단이, 결정이 얼마나 틀렸고, 또 옳았는지- 즐겁고 피곤한 하루의 끝에서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쉬이 잠들지 못했다. 그리고 comma로 남겨졌던 많은 것들이 period로 정리되어 감을 느꼈다. 일 년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 많은 것들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또 더 많은 것들이 변하기도 했다. 그것이 다행으로 느껴졌는지, 아니면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행여 제일 많이 변화한 건 내 태도와 시선이 아닐런지, 하는 생각에 일종의 죄책감마저 엄습하여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럼에도, 제일 중요한 것은 아마 변하지 않았을테지만-
예전처럼 그렇게 이곳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을까, 하고 자문해 보았을 때, 예전보다는 좀 더 근거있고, 확신에 찬 대답과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여러면에서 이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차례임을 깨달았고,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내게 꼭 필요했던 시간이 비로소 주어졌다. 일 년도 넘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vii. 마지막 날, 모두가 모인 레스토랑. 섭외한 밴드는 Damien Rice의 Volcano를 멋지게 연주해주었다.

여전히 감사한 시간과 인연이다. 그러니까... Auf Wiederse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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