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선생이다 - 황현산.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모든 시간이 같은 시간은 아니며, 모든 땅이 같은 땅은 아니다. 사람들은 시간을 같은 길이로 쪼개서 달력을 만들지만 어떤 날은 다른 날과 다르고 어떤 시간은 다른 시간과 다르다. ... 비옥한 땅에서건 척박한 땅에서건 사람들이 살고, 꿈꾸고, 고뇌하는 가운데 조금 특별한 일을 실천하려 했던 기억이 한 땅을 다른 땅과 다르게 하고, 내 몸을 나도 모르게 움직이게 한다. 땅이 그 기억을 간직하지 못한다면, 이 나라 사람이 이 땅에서 반만년을 살았다 한들, 한 사람이 이 땅에서 백년을 산다 한들, 단 한순간도 살지 않은 것이나 같다. - <장소의 기억> 중.



... 이 영화의 주인공인 순결한 청년은 "가만히 눈감으면 잡힐 것 같은" 것들이 항상 잡히는 것이 아님을 안다. 아무리 아름답고 거룩하게 여겨야 할 것이라도, 그 아름다움과 거룩함이 이 세상에서의 그 실현을 곧바로 보장해주는 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늘 성장통이란 말을 끄집어내게 된다. 그런데 합당한 말인가. 그 말이 비록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내용을 가득 안고 있다 하더라도, 젊은 날의 고뇌와 고투를 그 미숙함의 탓으로 돌려버리게 하기에도 십상이다. 젊은 날의 삶은 다른 삶을 준비하기 위한 삶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한 삶이기도 하며,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삶이 거기 있기도 하다.  ... 봄날은 허망하게 가지 않는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것들은 조금 늦어지더라도 반드시 찾아오라고 말하면서 간다. - <봄날은 간다> 중.



... 말과 진실이 맞물리지 않아서, 혼탁한 정치 위에 허망한 말들이 위험한 다리처럼 걸려 있었다. 차라리 말이 진실을 감추고 있었기에 우리가 불행한 세월을 오랫동안 눈감고 견딜 수 있었다고 자위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삶을 개혁한다는 것은 말들이 지니고 있는 힘의 질서를 바꾼다는 뜻도 된다. 개혁의 시대에는 열정을 지닌 개인의 과격한 언어들이 밑바닥 진실의 힘을 업고 관행의 언어들을 압도하기 마련이다. - <밑바닥 진실 마지막 말> 중.



... 삶을 깊이 있고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은 우리가 마음을 쏟기만 한다면 우리의 주변 어디에나 숨어 있다. 매우 하찮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 삶을 구성하는 것 하나하나에 깊이를 뚫어 마음을 쌓지 않는다면 저 바깥에 대한 지식도 쌓일 자리가 없다. 정신이 부지런한 자에게는 어디에나 희망이 있다고 새삼스럽게 말해야겠다. - <먹는 정성 만드는 정성> 중.



... 브르통은 이렇게 덧붙인다. "이와 같이 옛날에 불쌍한 인간들은 호기를 부리며 악마를 질책하였고, 그래서 결국 악마가 제 모습을 드러내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 브르통의 발언은 절망적이지만, 자신이 신뢰하는 체계 또는 자기 신념의 체계에 대한 이 몰아세우기는 사물 속에, 역사 속에, 인간의 마음속에 감추어진 가능성들을 늘 현재화하려는 초현실주의의 기획과 상통하는 점이 없지 않다.  ... 그러나 직책과 다그침으로 감추어진 어떤 힘을 지금 이 자리에 불러올 수는 있어도, 그 힘이 지금 이 자리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어떤 초자연적인 힘이라도 지금 이 자리에 구속되는 힘은 지금 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그 힘의 자리는 시간이다. 저 금지된 시간의 알레고리는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할 시간의 알레고리이다. 모든 예술적 전위의 다그침은 역사적 시간의 파괴가 아니라 그 믿음을 가장 날카롭게 곤두세워 믿어야 할 시간과 자기 사이에 어떤 운명의 장치를 만드는 일이다.  - <금지된 시간의 알레고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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