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와 detachment. rambling.



i. 가을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처서', 그 어감을 늘 좋아했다. (어쩐지 특별한 느낌마저 받곤 했다.)

한편 여름과 가을의 경계, 사자자리와 처녀자리의 경계. 그렇게 늘 경계에 걸쳐져 있는...



ii-a. 영화 detachment의 Henry는 substitute teacher이다. 그에겐 commitment가 요구되지 않고, (의식적으로 detach하려는 마음은 정말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자신과 타인을 방어하기 위한 그의 선택일테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을 가졌고, Erica와 Meredith는 다행스럽게도, 아마도 그의 진심을 알아주었던 것 같다. (그들의 결과와는 별개로.) 



ii-b. 

영화에도 등장하는 카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글의 느낌을 상상해본다. (글은 다각에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자아 손실과 일종의 submission 아닌 submission이라든지...) 

자주 스스로가 여러 개로 분할되어 각기 다른 time zone들과 장소에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가지고 살고 있는데, 아마 이 느낌과 비슷한게 아닐까도 상상해본다. 


얘기를 나누고 있는 이 친구는 다른 대륙, 이미 내가 지나온 과거의 시간 속에 존재하며 살고 있고, 또다른 친구는 또 다른 대륙에서 내게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시간 속에서 오롯하게 존재하며, 난 '지금' '여기'에 이렇게 살고 있다. 현재의 시공간 속에서 여러모로 detach 되어있지만, 난 분명히 지금 여기에 물리적으로 존재한다. 

시공간을 초월(?)한 일상이다보니, 조금 늦고, 빠르다는 것- 조금 멀고, 가깝다는 것은 내게 더이상 큰 의미가 없다. (그러니 그것으로 인해 생겨나는 아쉽고 속상한 일들에 대해 얼마만큼 마음 아파하는지, 또 얼마나 초연할 수 있는지는 내게 달려있는 문제이고, 난 분명 그것에 대해 좀 더 덤덤해질 수 있는 법을 배워나갔고, 여전히 그걸 성숙해져가는 과정이라고 믿고 있/싶다.)



iii. 영화 the fault in our stars에서 기억에 남는 건 "It'd be a privilege to have my heart broken by you."라는 대사이다. 어차피 회피할 수 없는 고통(?)이 따르는 것에서, 용기있게 '선택'을 한다면 그 고통이 조금은 덜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굉장한 용기이다.
  


iv. 최근 누군가는 어떻게 하면 그렇게 늘 행복할 수 있냐는 질문을 했고, 다른 누군가는 또 과연 행복한지, 후회는 없는지 물었다. 워낙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긴 하지만, 이렇게 상반되는 질문을 받고나니 다른 이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나 문득 궁금해졌다.  어떤 모습이든,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람이 되는 것은 감히 바라지 않고, 적어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엔 늘 변함이 없다.



v. 8월의 크리스마스를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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