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d the next step is/should be... rambling.



i. 언젠가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가지고 있고, 그러기 위해서 (지금부터)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도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막연한' 것은 앞으로의 기회비용에 대적할 만한 동기나 목적이 스스로에게 충분하지 않아서 일테다. 


특정한 학문과 주제에 대한 뚜렷한 열정과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지식에 대해 아직 자신이 없고 (호기심만 많은 것 같고), 이것들이 갖춰져서 목적을 달성(?)한 아득한 후를 미리 상상하고 그땐 '더' 행복해질까, 하고 자문해보면 대답은 물음표이다. 지금 내게 있어 이 막연한 목표의 달성은, '여러모로 유랑하는 날들'에 대해 스스로와 타인에게 덜 미안하고 좀 더 떳떳해 질 수 있는 결과물이고, 또 (시간이 지나면 아마 또 바래질)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건 내게 있어 즐거운 도전이라는 느낌보다, 과제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반면 내가 또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것이 사회/세상에 어떤 호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나는 그나마의 명분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혁신적인 결과물은 고사하고, 아주아주 미미하지만 조금은 새로운 해석을 제시할 수 있다면 천만다행일테다. 요즘 일하면서 자주 생각하는 것은 난 과연 무엇을 '생산/창조'하고 있나, 인데, 그 모든 것은 (내게는) 분명 감사하게 여기고 있는 배움의 과정이지만, 내가 하는 일을 위해 소비되는 직장의 각종 자본이나 시간 등에 상응하는 결과물인지, 또 사회/세상에 어떤 식으로라도 중요한 호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서 결과물에 대한 의지와 책임감,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조차 자신할 수 없다면 학교로 돌아간다는 막연한 목표는 불필요한 사치일테다. 이러한 생각의 흐름은 (내가 범접할 수 없어 더 동경하는) 각종 공학 세계의 발전(http://www.bbc.com/future/sponsored/story/20140721-the-urban-conscience)을 전해들을 때면 더 가속도가 붙어버리고, '그래, 자본이나 시간은 이런 발전을 위해 투자되어야지.'라는 생각이 들어, 영향의 깊이와 범주조차 희미한 내 목표를 살포시 내려놓아야만 할 것 같다. 

어쩌면 그 목표를 이루는 것 보다, 내 웃는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들 곁에서 머물며, 자주 웃고 고마워하고 그들과 일상을 공유하는게 더 의미있고 가치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더 많이 고민해 봐야겠다.



ii. 더 나은 미래를 앞당기는 발명가에 대한 동경은 예이츠의 시집을 읽으며 감동할 수 있는 마음과 공존할 때 의미가 있다.



iii. 사람의 생명, 강인한 기원을 투영하지 않는 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감동을 주는 건축물은 태어날 수 없다. 사람의 온기, 생명을 작품 밑바탕에 두는 일. 그 지역의 전통과 문맥, 에센스를 어떻게 감지하고 앞으로 만들어질 건축물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일이다. - Itami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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