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 Milan Kundera.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변질된 가치나 가면이 벗겨진 환상은 똑같이 초라한 몰골을 하고 있고, 서로 비슷하게 닮아서 그 둘을 혼동하기보다 더 쉬운 건 없죠."


... 내가 아는 것, 그것은 다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었고, 한 때 그토록 사랑했던 이의 얼굴이 맞는지 머뭇거린다는 것이 참으로 야비하기 이를 데 없다는 사실이었다.


... 나는 또한 안다. 그 경계를 넘는다면 나는 나이기를 그칠 것이며 어떤 사람일지는 몰라도 하여간 다른 사람이 되리라는 것을. ... 나는 내 삶이 하나로 온전히 남기를 원한다.


... 마치 억압되었던 내 기억들이 지금 내가 주변에서 보는 모든 것들 - 저 황량한 벌판과 마당과 헛간들, 탁한 강물, 배경 전체를 하나로 통일하며 모든 곳에 스며 있는 이 한기- 에 배어들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내 기억들로부터 달아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기억들은 나를 포위하고 있었다.


... 그렇게 해서 나는 내 삶이 연속성을 상실했다는 것, 그것이 내 손에서 빠져나갔다는 것, 이제 나는 결국 아무 가망 없이 내가 지금 놓여 있는 곳에서 살아가는 길밖에 없다는 사실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마저도,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점진적으로 내 시야는 이 비인격화의 어스름에 적응해갔고 주변 사람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보다 분명 늦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행히 내가 그들에게 완전히 이방인이 될 만큼 아주 늦은 것은 아니었다.


... 슬펐다. 내가 최근에 체험한 사건들은 결코 예외적인 일이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행동했던 것은 그 일을 어떤 화려한 모험으로 여기고, 그 순간의 기분으로, 또 모든 것을 알고 싶고 (고상한 것이건 비천한 것이건) 모든 것을 겪어 보고 싶다는 들뜬 열망에서 그랬던 것인데, 그것은 이제 현재 나의 삶을 이루는 근본적이고 일상적인 조건이 되어 있지 않은가.


... 정원 한 모퉁이 수양버들은 이 풍경 속에서 길을 잃고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나는 바로 그래서 이 나무의 자리가 바로 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부조화가 마음을 어지럽혔다. 단지 부조화가 이 풍경의 공통분모 같아 보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거기에서 나는 나 자신의 운명, 여기에 유배된 나를 암시하는 어떤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히 나 개인의 역사를 도시 전체라는 한 객체 속에 그런 식으로 투영하면서 어떤 위안 같은 것을 받기도 했다. 담쟁이덩굴이 우거진 작은 집도 수양버들도 이런 장소들에 속하지 않듯이, 아무 데로도 이어지지 않는 짧은 길들, 서로 이질적인 건물들이 들어찬 그 길들이 그 장소들에 속하지 않듯이, 나 또한 여기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다. ...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바로 내가 이곳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이 경악할 만한 부조화의 도시, 이질적인 모든 것들을 하나로 무자비하게 끌어안고 있는 이 도시,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하는 내 자리라는 것을.


... 마지막 3행이 이렇게 끝나는 시다.

오, 거짓된 말들의 난행, 나는 침묵을 믿는다
아름다움보다 강한, 모든 것보다 강한 침묵
오, 소리 없이 서로 이해하는 이들의 축제.


... 나는 아주 회의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약간의 비합리적인 미신이 내게 남아 있는데, 내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그 자체 이상의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어떤 것을 상징하고 있다는 묘한 믿음이 그런 것이다. 삶은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우리에게 말을 하고 점진적으로 어떤 비밀을 보여 준다는 믿음, 삶은 해독해야 할 수수께끼로서 주어지는 것이라는 믿음, 우리가 겪은 일들은 동시에 우리 삶의 신화를 형성하며 또한 이 신화는 진실과 불가사의의 열쇠를 모두 지니고 있다는 믿음. 그것은 환상일 뿐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주 그래 보이기까지도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의 삶을 계속해서 해독해야만 하는 이런 욕구를 억누를 수가 없다.


... 이야기에는 진실과 시적인 허구가 뒤섞여 있었고, 그래서 그것은 옛 전설을 대신하는 또 하나의 (아마 보다 진실에 가깝고, 보다 아름답거나 혹은 심오한) 전설일 뿐이었던 것이다.


... 수 세기 전부터 모라비아 마을들에서는 꼭 오늘처럼 소년들이 이상한 메시지를 지닌 채 말을 타고 길을 떠나, 자신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 낯선 방언으로 쓰인 말들을 감동적일 만큼 충실하게 읊어 내곤 한다.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이 분명 무언가 아주 중요한 말을 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 그들의 메시지는 결코 해독되지 않을 것이다. 단지 그것을 풀 수 있는 열쇠가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 아주 오랜 메시지와 새로운 메시지들이 서로 겹겹이 겹치고 쌓여 가면서 무슨 내용인지 파악조차 되지 못하는 그런 시대에, 이제 사람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그런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벌써 역사는 잊힌 것들의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가느다란 기억의 밧줄일 따름이지만, 시간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이제 한정된 개개인의 기억 속에 모두 들어올 수조차 없는 또다른 수천년의 세월이 이미 지나가 버리고 난 후인 시대가 다시 올 것이다. ... 불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인간은 자기 자신의 개념 자체를 잃어버릴 것이고, 파악도 이해도 불가능한 인간의 역사는 의미를 상실한 도식적인 기호 몇 개로 축소되어 버리고 말 테니 말이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수천의 '왕들의 기마 행렬'은 무언지 뜻 모를 구슬픈 메시지들을 가지고 먼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로 떠날 테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듣고 있을 시간이 없을 것이다.


... 이제서야 비로소 나는 왜 왕이 얼굴을 가리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그를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아무것도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 내가 이 세계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오늘 아침, (뜻밖에도) 이 세계를 초라한 모습으로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아주 쓸쓸한 모습으로. ... 이런 고독 속에서 이 세계는 정화되었다. 나에 대한 꾸짖음으로 가득한 이 고독은 마치 얼마 살지 못하는 사람과 같은 이 세계를 정화했다. 그 고독은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최후의 아름다움으로 이 세계를 눈부시게 빛나게 하고 있었다. 이 고독이 그 세계를 나에게 되돌려준 것이었다.


... 그리고 나는 이 노래들 속에서 (이 노래의 유리 집 속에서) 행복했다. 거기에서는 슬픔이 가볍지 않고, 웃음이 비웃음이 아니고, 사랑이 우습지 않으며, 증오심이 맥없지 않고, 사람들은 온몸과 마음으로 사랑하며, 행복은 사람들을 춤추게 만들고, 절망은 다뉴브 강으로 뛰어들게 만들며, 그곳에서는 그러니까 사랑이 사랑으로, 고통이 고통으로 머물고, 아직 가치들이 유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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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읽는 내내 완전히 몰입되어 그저 감탄, 또 감탄. 인간으로 태어나 이러한 것을 창작해 낼 수 있다는 건 과연 어떤 느낌일까...


ii. 시간의 힘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을 논하는 것이 과거를 얘기하는 것보다 조심스러운 이유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더 선명하게 보이는, 알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 긴 시간을 버텨내고 살아낸 것들에게 경의를 표하되, 어느정도의 허구성과 왜곡성을 인지하고, 복합적인 요인을 고려하여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할테다.) 하지만 시대가 잃어버린 인내심과 망각의 효과는 너무 강력하다. 
 

iii. 그래서 많은 것들이 그저 실수와 농담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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