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 김화영.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눈을 감으면 내 반생의 행로를 따라 곳곳에 수많은 방들이 문을 연다. ... 잠시 머물기도 했고 가재도구를 장만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머물기도 했다. 이런 수많은 낯선 방, 낯익은 방들을 이어주는 삶의 흐름, 그것이 내게는 여행이었다. ... 여행은 내게 삶 그 자체다. ... 나는 어디를 가나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을 구경하는 일보다 삶이 더 중요했다. 남들의 기이한 삶, 뜻있는 삶을 바라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그 이상으로 "지금 여기서 나는 살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실감하는 것이 필요했다. ... 그 어디에 가든 거기에는 나의 현재의 삶이 따라와 있다. 나는 그것을 가장 귀중하게 여긴다. 왜냐하면 그 삶이 있어야 비로소 남의 삶, 남의 풍경이 내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여행은 나의 삶이 남의 삶이나 공간을 만나는 감촉이며 공명이다.


... 어떤 무덤이건 무덤은 그 사람 최후의 성이다. 이제 그는 '바람구두를 신고'  떠돌아다니기를 그쳤다. 그의 영원한 현주소는 이제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다시 열리지 않을 저 묘혈의 문 뒤에 가득한 어둠, 그것은 오직 그만의 어둠이다. ... 우리는 다만 상상할 뿐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삶의 빛을 통하여 죽음의 어둠을 짐작할 뿐이다.


... "이 거리를 따라 은회색의 빛 속을 생각도 없이 거니는 것은, 천천히 거니는 것은 좋았다. 아직 담뿍 유예된 기간이 있고, 부드러운 융합이 충만해 있고, 그지없이 먼 비애와 단순히 아직도 살아 있다는 데 대한 융합이 충만해 있고, 그지없이 유연한, 자꾸만 되풀이 맛보는 행복이 지평선처럼 혼합되어 있는 경계선에서 이러한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좋았다. 이 회유한 동물의 감정, 머리 갔다 멀리에서 돌아오는 이 호흡, 아직 아무런 느낌도 없이, 마음의 가로를 따라, 사실의 희미한 불, 지나간 날의 못박힌 십자가와 다가오는 날의 가시못을 불어 지나가는 이 산들바람, 휴지, 흔들리는 가운데에서의 침묵, 정지의 일순, 가장 더 열려지고 동시에 가장 더 닫혀진 현존. 세상의 제일 허망한 것 가운데에서의 영원을 새기는 조용한 시계소리."


... 여행의 참맛은 낯섦 못지않게 '고독함'에 있다. .. 혼자 떠나는 여행의 고독은 다름아닌 자신과의 대면이다. ... 이 대면은 벌거벗은 삶과의 만남이다. ... 일상의 습관 속에서 우리를 치장하고 보호하고 은폐해주던 모든 베일이 다 벗겨진 나의 참모습이 거기 있다.


... 여행을 통하여 우리들은 이별 연습을 한다. ... 이별의 수만큼 그리움의 수도 늘어간다. 저 푸른 산이 이만큼 다가왔는가 하면 어느새 그 옆모습이 보이고 또 어느새 저만큼 뒤에서 나를 전송하고 있다. 그리고 또 새로운 길과 낯선 도시.


... 그렇게 만났다가 그렇게 떠나보낸 사람들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우리의 일생이 한갓 여행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행길에서 우리는 이별 연습을 한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 한 떨기 빛. 여행은 우리의 삶이 그리움인 것을 가르쳐준다. "우리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있어야 하네." 여행길에 선 떠돌이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영원히 머무는 것이 아니라 쉬 지나가는 것을 사랑하라고 여행자는 가르쳐준다. 생명은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이기에. 그리고 모든 것은 이별이기에...... 생명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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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 자체가 매개체였던 시간이 그리워졌다. (그것의 성격은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하지만 그 면모는 배제하고.) 당연했던 것이 더이상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순간 순간, 자신과의 대면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들을 생각하면 기운이 난다. 그 존재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희망과 힘이 되어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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