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기쁨 - Hermann Hesse.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밭은 곡식을 맺으나 돈이 듭니다.

풀밭엔 철조망이 둘러쳐 있고

필수와 탐욕의 나열입니다.

모든 것이 멸망하고 봉쇄됩니다.

 

그러나 여기 내 눈 속에는

만물의 다른 질서가 깃들고 있습니다.

자색이 융합하고 오랑캐꽃이 군림하고,

그들의 철없는 노래를 나는 부릅니다.

 

황색에 황색이, 적색에 황색이 겹치고,

시원한 청색이 붉은빛이 되고,

광선과 색채가 이리저리 떠돌고,

원을 지어 사랑의 물결에서 울려 옵니다.

 

만병을 치료하는 정신이 지배합니다.

새로 솟아오르는 샘물에서 초록색이 어리고,

세계는 새로이 뜻 깊은 분할을 하고,

마음 속은 기쁘고 쾌활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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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엄마가 그려주신 그림이 벽에 걸려있었다. 동화처럼 예쁜 그림. 한 소녀가 테라스에서 머리를 빗고 있고, 집 밖으로는 강아지니, 오리떼니.. 많은 동물들이 돌아다니는 귀여운 그림이었다. 그 소녀가 누구냐고 묻는 내게, 엄마는 나라고 대답을 해주셨고, 어린 나는 마냥 기뻐하며 그림 속 소녀와 나를 동일화 시키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시간이 지나 점점 커가면서 엄마가 나를 위해 그려주시는 것들도 바뀌었다. 낡은 테이블을 구해다가 새로 칠을 하신 후, 내가 좋아하는 시와 꽃들을 그려 생일선물을 해 주시고... 여행 다녀온 곳의 풍경을 그리시고, 또 우리 가족을 위한 식탁을 멋지게 그리시곤 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오늘도 날 위한 새로운 그림을 그리셨다는 엄마. 


난 엄마의 딸로서 이토록 행운이지만, 과연 내가 얼마나 좋은 딸이 되어드리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어드리는 것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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