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giliana, Spain. 순간을 믿어요.


Frigiliana, Spain.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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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 대한 영감(?)은 다양한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책에서 묘사한 오동도와 향일암이 좋아서, 화개장터의 제첩국 묘사가 그럴싸해서 떠난 적도 있고, 영화 속 주인공들을 동경하는 마음에서 비엔나에 가기도 했고, 존경하는 이의 발자취를 조금이나마 더 좇고 싶어 뮌헨에 갔었다.

Frigiliana로 이끈 건 우연히 보게 된 사진 한 장이었다. 하얀 동화같은, 그림같이 마냥 예쁜 마을. 난쟁이들이 모여 살 것 같은 그 동화같은 모습에 막연히 그 곳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고, 시간이 흘러 세번째 스페인 여행을 세우게 되었을 때, 당연히 일정에 넣었다.

드디어 Frigiliana에 가게 된 날은... 비가 내렸다. 사진 속 새파란 안달루시아의 하늘과 하얀 집들의 극대비를 보고 싶었었는데.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하고 마을 구석구석을 걸어다녔다. 날씨 탓인지 관광객들은 거의 없었고, 다리를 다친 떠돌이 개 한 마리가 내내 졸졸 따라다녔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돌바닥은 미끌미끌. 조심조심 걸어야 했다. 흐릿한 잿빛 하늘, 드문드문 굴뚝 위로 나는 연기... 여전히 예쁜 마을이었지만, 상상했던 것처럼 완벽한, 동화의 마을은 아니었다. 


최근 Mike Leigh 감독의 영화 두 편을 보았다. (나의 영원한 꿈의 도시) 런던에서 사는 가족들의 일상을 그린 영화들. 꼭 연민을 일으키려고 하기 보다, 여러 인생을 가감없이 보여주려고 한 듯한, 싫든 좋든, 존재하는 삶의 단면들. 나이를 먹을수록 사그러지는 꿈들과 손아귀를 벗어나는 환상들. '이게 현실인가,' 좌절하게 되는 순간들. 그렇지만, 마냥 완벽하지 않아도, 간직한 약간의 따스함이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해 주는...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다가, 정말 갑자기, Frigiliana가 떠올랐다. 아마도 그 때, '마냥' 동화같은, 그림같은 현실은 없구나. 하고 다시금 절실히 느껴서였을까. 뭐,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날 비가 와서 어쩌면 다행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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