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tislava. 순간을 믿어요.

Sept, 2013.
Bratislava, Slovakia.

기차를 타고 가는 길, 종점역은 부다페스트였다. 6명씩 앉을 수 있는 기차 객실엔 중국인 학생들 두 명이 탔다가 프라하에서 내렸고, 곧 할머니 두 분이 그 자리를 채우셨다. 조금은 기진맥진하신 표정. 눈으로 인사를 드렸더니, 아침에 겪으셨던 한바탕 소동을 내게 얘기해 주신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가 두 시간 남짓 이어졌고, 정이 많으신 호주 출신의 72세, 74세의 자매 할머니는 그렇게 내게 한참동안 여러가지 인생 얘기를 해 주셨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남편분과의 영화같은 러브스토리부터 그동안 다녀오신 수많은 곳들에 대한 인상들까지.

도착지에 다다른 내가 먼저 내려야 했을 때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엇을 찾으시더니, 사과와 코알라 인형 열쇠고리를 선물로 주시면서, 언젠가 호주에 놀러오면 꼭 연락하라며 이름과 전화번호와 이메일을 종이에 써주신다. 잠깐 본 나에게 그런 사랑을 베풀어주시다니... 무척이나 감동했다. 또 내가 일흔이 넘은 나이가 되었을 때, 그 자매분들처럼 몇 달간 씩씩하게 세계 여행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해 보았다. 기차여행을 할 때마다 막연히 기대하게 되는 before sunrise의 Jesse는 아니어도 충분히 멋진, 기억에 남는 만남이었다.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는 사랑스러운 도시였다. 작고 낡은 기차역이 한 나라 수도의 것이라기에 조금은 놀랐던 것이 사실이지만, 발로 닿는 그 구석구석은 그저 사랑스러웠다. 화려했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시절의 영광을 가늠할 수 있는 예쁜 구시가지와, 아직 남아있는 벨벳 혁명 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공산주의 시절의 건축물, 또 자본주의 속, 각종 투자은행들의 위풍당당한 현대적 건물들이 어색하게 공존하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그것은 내게 늘 특별하고 신선한 경험이다. 어색한 공존과 타협, 그리고 시간이 해결해 준 것들, 그리고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아 아직 과제로 남아있는 것들.


기초는 9세기부터 지어졌다고 하지만, 지금의 재건된 모습은 그 역사가 채 50년이 되지 않은 성에도 올라가 보았다. 사실 성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굳이 그 곳에 가려 했던 건 브라티슬라바 시내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곳에 올랐을 때, 마침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마주하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들과, 유유히 흐르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을 한참이나 바라보면서 많은 이들을 떠올렸다. 떠나오기 전, 내 선택들에 결코 후회하지 않길 간절히 기도도 하면서.

  

덧글

  • 우물쭈물하지않으리 2013/10/07 18:14 # 답글

    우오 브라티슬라바 가본 분 마니 없으실텐데!! ㅎㅎ 저도 한달여전에 다녀와서 ㅎㅎㅎ 조용한 분위기였죠?? ㅎㅎㅎㅎㅎ
  • iris 2013/10/07 21:55 #

    네. 참 조용하고 정감있게 예쁜 도시였어요! 한달여전에 다녀오셨었군요- 좋은 여행이셨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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