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 23 일기. rambling.


... 이제나 저제나 하고 집에서 소포가 오길 기다렸다. 겨울 옷가지 등이 담긴 20kg 가량의 큰 소포. 그런데 아무래도 무게가 나가서인지 그만 세관에 걸려버렸다. 소포 대신 날라온 건 직접 세관에 와서 찾아가라는 편지. 뭐, 입던 옷들이니 따로 세금은 안 내도 되겠지만, 글쎄 세관은 내가 사는 곳에서 40km 정도 떨어진 (오히려 폴란드랑 더 가까운) 곳에 자리했다. 구글에서 찾아보니 인구 2만명 정도의 작은 마을이었다. (옛 동독은 세계를 무대로 한 서독 자본주의의 infrastructure를 갖추지 못했고, 그로 인해 경쟁력이 떨어져 독일 통일 후 동독의 인구는 계속 감소하는 추세이다.) 차도 없이 도대체 이곳에 어떻게 가야하나, 또 그 무거운 걸 어떻게 들고오나, 앞이 캄캄했다.

 

마침 기숙사 옆 집의 독일 친구가 지나가길래 이곳이 어딘가 하고 물으니 자기도 잘 모르겠단다. 그리고 외출 후에 돌아와 찾아봐서 알려준다고 했다.

 

거길 어떻게 찾아가야 하나. 무거운 마음으로 오후를 보냈다. 그리고 저녁 8시경, 친구가 찾아왔다. regional train을 타고 가야한다며 종이에 꼼꼼히 시간 등을 적은 것을 건네주었다. 너무 고마워서 사과 두어개를 주는데, 왠 예쁜 봉투를 내민다. 열어보니 발레 공연 티켓이 들어있었다. 10월에 쇼팽 음악을 주제로 한 발레 공연이 있다며 같이 가잔다. 지난 번에 만났을 때 이것저것 문화 얘기를 해서인지 내가 생각났나보다. 이렇게 일부러 정보 알아다 준 것도 너무 고마운데, 공연 티켓도 선물해주고... 또 이태리 친구는 짐을 들어줄테니 도착하면 연락하란다. 따뜻한 말이 참 고맙다. 다들 어찌나 고마운지 속상했던 오후가 잊혀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섰다. 이곳에 온 지 한 달만에 다시 이민 가방을 들고. (커다란 소포를 들고 올 자신이 없어 이민 가방을 끌고 가서 옮겨 담기로 했다.) 싸늘한 아침, 기차역으로 가서 표를 끊고 자리에 앉았다. 커다란 창문이 있는 자그맣고 깨끗한 기차.  

 

그렇게 30분경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황량한 작은 마을. 또다시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젠 어디로 가야하나, 털털거리는 빈 이민 가방을 끌고 막연히 버스 정류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주소가 적힌 종이를 들고 가서 버스 기사 아저씨께 말씀을 여쭈었다. 아저씨가 주소를 보시더니 곤란한 표정을 지으신다. 그러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하시며, 어느 버스로 안내해 주신다. 보아하니 따로 세관에 가는 교통편이 없어, 이 시외버스가 그나마 그 근처를 지나가니 최대한 가까이 내려주신단다. 이렇게 고마울수가!

 

그렇게 시외버스를 타고 황량한 길 한복판에 내렸다. 두리번 거리는 나를 보시더니, 이번엔 주위에서 공사하시던 분들이 어딜가냐고 물으시며 도와주시려 한다. (무려 일부러 포크레인에서 내리셨다.) 주소를 보여드리니 쭉- 걸어가면 된다고 하셔서 감사 인사를 하고, 열심히 걸었다. 

 

마침내 도착한 세관. 서류를 내미니 창고로 안내를 받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소포를 뜯어 내용물을 확인하고 세금 낼 것이 없는지 확인 받고, 옷가지들을 이민 가방으로 열심히 옮겨담았다. 그래서 무사히 찾은 내 짐! 

 


(황량한 독일의 시골 길 한복판. 과연 이 곳에 발을 딛은 한국 사람이 또 있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쓸쓸해 보이는 내 이민가방..) 

 

이제 짐을 찾았으니 다시 기차역으로 돌아가는게 문제였다. 설마 다른 버스라도 있겠지, 싶어 다시 걸어나오는데,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또 반겨주신다. '기차역까지 어떻게 가나요?' 하니 또 곤란한 표정들이시다. 따로 버스도 없나보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도 아니고... 짐도 무거워 보이고..' 하시던 한 아저씨께서 '내가 데려다 줘야겠군!'하신다. 그리고 하시던 일을 잠시 멈추시고, 트럭에 내 이민가방을 실어주신다. 이렇게 감사할 수가..

 

기차역으로 가는 길,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여행을 무척 좋아하셔서 일년에 3주정도는 꼭 이곳 저곳을 다니신다며, 내년 1월엔 파나마와 멕시코에 가실 계획이란다. 그리고 계속 감사 인사를 드리니, 본인도 여행을 많이 다니시면서 현지인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허허 웃으신다.

 

그렇게 무사히 기차역에 도착. 너무 감사한 마음에 가방에 있던 초콜릿이라도 드리려고 하니 사양하신다. 그래서 대신 기념 사진을 찍기로 했다.

 


                              (너무나 감사한 분!) 

 

다시 학교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기차에 올라 김연우의 '흐려진 편지 속엔'을 들으며 고마운 사람들을 하나씩 마음에 그리자니- 또 긴장이 풀렸는지 눈물이 절로 났다. 지난 한 달 동안 얼마나 고마운 사람들이 많았는지. 나는 얼마나 복을 많이 받았나- 감사한 마음이었다.

 

 

처음 이 곳에 오게 되었을 때 걱정되는 마음이 아주 없진 않았다. 옛 시절의 잔해가 남아있어, 사람들이 서로를 불신하고 차갑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극우주의자들도 많이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여지껏 나는 너무 따뜻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동독의 많은 도시들이 저물어간다지만 내겐 그 곳들 모두 인간미 넘치고, 고마운 장소들로 기억될 것 같다. 나도 고마운 사람들의 선한 마음을 또 선한 마음으로 보답하며 살아야겠다.

 

 

     (가을이 다가오고 있는 옛 동독의 작은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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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그 날의 기억. 쏜살같이 지나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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