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을 기억하기. rambling.



친한 친구들과 자주 갖는 저녁모임에서 참 오랜만에 한 친구를 보았다. 이번에 프놈펜에서 열린 committee session에 다녀 온 그 친구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았는데, 친구는 값진 경험이었다며 여러가지 얘기를 해주었고, 어느새 주제는 killing fields로 넘어갔다. killing fields에 대해서는 수박 겉핥기식 수준의 지식만 갖고 있었던터라 (영화도 보려고 마음만 먹었을 뿐, 매번 무거운 주제에 미뤄두기만 했다), 친구의 얘기에 놀라움만 거듭 일었다. 그리고 대화 속 또 한번 느낀 것은 인간의 비인간적인 면모 보다도, 각종 단체에 대한, 그들의 반응/대응에 대한 실망이었다. 


그토록 원했던 공부를 시작한 후, 사실 먼저 다가온 것 역시 (내가 동경했던 세계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완벽한 이상향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또 한번의 깨달음.) 시간이 흐르면서 가졌던 환상이 하나둘씩 깨지기 시작했고, 공부의 끝맺음이 가까워지는 지금, 처음의 마음가짐이나 목표와는 조금 멀어져 있는게 사실이다. 사실 논문을 쓰기 전만 해도, 내 인생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결과물- 어떻게든 사회에 도움이 되는-을 얻을 수 있을거라 자신했다. 처음 생각한 주제를 가지고 지도교수님들을 뵈러 갔을 때, 교수님들 역시 아이디어를 마음에 들어하셨고, 그대로 신이 나서 주제를 구체화 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료 수집 과정조차 결코 쉽지 않았고, 이러한 어려움을 토로했을 때, 교수님들과 친구들에게서 현실을 직시하고, 논문 주제의 extent를 줄이라는 조언을 받았다. (또 교수님들께서는 미래의 잠재적 고용주에게 잘 어필할 수 있는 논문을 쓰라는 매우 현실적인 조언도 해 주셨다.) 그 때 고민도 많이 하고, 좌절도 많이 하였고, 그로 인해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도 알았다. 

그렇게 방향을 조금 틀어 실용성에 중점을 둔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논문으로 사회에 무언가 contribute 하겠다는- 애초의 설레임, 혹은 주제넘었던 영웅심이 사라졌다. (막상 생각하면, 내 이름을 걸고 세상에 무언가 내보낸다는 것에 대해선 용기와 스스로의 결과물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그러니 초반의 내 마음은 일종의 치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실 과연 몇명이나 내 논문을 읽게 될 것인가.) 


그런 저런 이유로 일종의 권태마저 느껴졌었는데- 오늘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며, 또 killing fields 같은 사회 현상에 대해 논하며- 초심과 또 내가 아직도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주고 싶은 것들이 상기되었다. 공부를 마쳐가는 지금, 잊고 있었던 그 초심이 다시 빼꼼-하고 머리를 내미는 것 같아 왠지 힘이 났다. 


분야에서 저명하신 교수님들께 감사하게도 많은 것을 배웠지만, 사실 내게 있어 가장 큰 배움은 학문적/이론적인 것보다, 현실에 대해 더 넓은 시선을 갖게 된 것 같다. 정말 다양한 배경을 지닌 친구들과 -실제 이름이 너무너무 길기만 한 프랑스 귀족부터 아이가 두 명 있는 탄자니아 출신의 40대 변호사 아주머니까지- 함께 하는 정말 그 매 순간이 배움이었고, 그렇게 쌓아온 경험과 배움을 잘 사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 잣대로는 성공한 사람이 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그 때 그 마음을 기억하기 위해 다시 찾아 본 옛 일기들. 기억하고 싶은 그 때의 열정과 마음들. 


(2011. 7. 14 일기 중.)


... 이번에 읽은 톨스토이의 참회록에서, 작가는 끊임없이 '왜 사는가?'를 질문한다. 결국 죽음으로 이어지는 삶 속에서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건 무엇일까. 나에게 '왜 사는가'하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대한 그림은 조금씩 구체적으로 그려나가고 있다.

 

- 마음만 앞선 대학생 시절, 하고 싶었던 일들은 인턴조차 (무임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석사 이상의 학위를 요구했다. 그 때, '아, 어떤 일을 하려면, 조금이라도 더 영향력이 있고 싶다면, 사회적으로 이러한 조건이 필요하구나.'하고 납득했다.

 

- 사실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공부는 정말 순전히, 그 자체가 흥미로우므로 '공부하고 싶어 공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만족에만 그치지 말고, 사회가 요구하는 일정한 조건에 해당되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면, 이 세상에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 그렇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사회에 호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사는 동안 행한 모든 좋은 일, 나쁜 일을 전체적으로 두고 보았을 때, 좋은 일이 아주 조금이나마, 눈꼽만큼이라도 더 많다면, 또한 그 일들이 나약한 사람들을 향한 것이라면, 행복할 것 같다.



(2011. 10. 8 일기 중.)

... 다음 주 본격적인 개강을 앞두고 같은 과 모임에 다녀왔다. 앞으로의 학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는데 굉장히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다음 달에는 다같이 폴란드로 답사를 갈 거라는 것에 들떴고, 석사 과정 내에 마쳐야 하는 프로젝트의 종류의 다양성에도 놀랐다. 그 중 하나는 터키 정부와 독일 고고학회가 협동하여 추진하는 프로젝트인데, 터키에 인류 최초의 temple로 추정되는 site에 직접 가서 발굴, 연구를 하는 것이었다. 또한 학업 내용은 내 관심사를 그대로 자극하는 것들이었고, eurocentrism을 반영했던 과거의 접근 방법이나 일종의 elitism에 갇힌 문화 향유법에 대해 토론할 생각을 하니 크나큰 호기심이 일었다.

 

이런 계획에 설레인 것은 사실이지만, 반면 director 분의 따끔한(?) 충고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비슷한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자리인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director는 절대 이상과 현실 속에서 잘 균형잡는 법을 잊지 말라고 강조하셨다. cause가 얼마나 훌륭한가에 관계없이, 이 분야는 분명 각종 political instrument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극히 제한된 자원과 수단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째서 noble cause와 financial success/profitability는 direct correlation을 지니지 않는가. 오랫동안 품은 불만이지만 여전히 현실은 냉혹하다.)

 

비슷한 성향과 열정을 가진 동기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모두 같은 판도에서 고민을 하는게 절실히 느껴졌다. 어쨌든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일단 나는 현실에 충실하고 싶다. (현실에 충실한다고 해서 shortsighted 되는 것은 아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마 내 평생의 과제는 내가 속한 모든 위치에서 'how to close the gap'을 답하는 것일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되도록이면 현명하게 그 도전들을 잘 헤쳐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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