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런 컵들과 언어의 늪. rambling.



i. 수년간 학교/직장 관계로 기한이 정해진 자취를 여러번 해왔다. '언젠가는 떠날 것을', 대부분 엄청난 거리를 넘나드는 숱한 이사에서, 또 배낭 여행 경험에서, 배운 교훈은 '짐을 늘리지 말자'이고, 그렇게 모든것을 최소화 시키려는 노력이 어느덧 성격으로 굳어져 버린 것 같다. 그래서 무언가를 살 때 한참 고민을 하게 되고, 새로운 여행지에서도 엽서 외의 기념품을 사는 일은 아주 드물게 되었다. 그런데 이 곳에 와서 (이삿짐으로는 결코 반갑지 않지만) 너무나도 사랑스런 컵들을 가지게 되었다.


첫번째는 비엔나 관광청에서 클림트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서 실시한 행사에 운좋게 당첨되어 받은 컵. 두번째는 엄마 전시회에 가지 못하는 나를 위해서 오빠가 만들어 준, 엄마의 작품 여러점이 실린 머그잔. 세번째는 네덜란드에서 한눈에 반해서 사 온 머그잔. (손잡이는 소? 송아지 모양인데 떨어뜨려서 귀가 떨어졌다. ㅠ_ㅠ) 네번째는 Lviv에서 산 에스프레소 잔. (키릴 문자가 신기해서...). 마지막은 뮌헨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산, 내 이름이 쓰여진 컵. (아직도 이 컵이 있었다는 자체가 너무 신기하다. 대부분이 기독교에서 유래된 독일/서양식 이름들 사이에 어색하게 자리하고 있던 딱 하나의 저 컵. 보면서도 어이가 없어 믿기지 않았고, 컵을 만든 이가 김연아 팬이려나, 하고 별의별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했던, 운명같은 컵♥)


이 컵들 덕분에 매일 무엇을 마실 때마다 기분이 너무너무 좋다. :) 이사 갈 때 잘 포장해서 가져가야지..


ii. 독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의 원천을 굳이 되새겨보면, 간접적으로는 전혜린-헤르만 헤세-괴테-쇼펜하우어-니체-비트겐슈타인-바흐가 있었고, 직접적으로는 부모님의 신혼 생활과 대학교 1학년 때 독일어 교수님에서 비롯되었다. (Incubus 보컬인 Brandon Boyd의 사촌이셨는데, 실상 Brandon Boyd 보다는 에릭 바나를 더 닮으신 그야말로 훈남 교수님이셨다.) 그렇게 동경하며, 마음 속으로 그리던 이 곳에 와서 공부하며 살게 되었건만, 독일어는 아직도 너무나 난해하기만 하다.


(옛 일기들 중..) 


1.... 문제는 숫자 받아쓰기였다. 선생님께서 580 정도 수준의 숫자를 불러주실 줄 알았는데, 이게 왠걸, 밀리언이 넘는 숫자를 불러주시는게 아닌가...... (독일어 숫자가 커지면 혼란스러워진다. 예를 들어 27을 말하려면, 7 하고 20, 이런 순서로 말을 해야하기때문에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그래도 독일어 숫자 말하는 방식이 프랑스어보다는 납득하기 훨씬 쉽다.) 아니, 48,387만 써도 "achtundvierzigtausenddreihundertsiebenundachtzig"라고 써야하는데, 이거 원, 밀리언이 넘어가니 시험지 쳐진 줄에 자리가 없어 다음 줄로 넘어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2. 학교에서 온 이메일을 읽던 중, "Mietvertragsunterzeichnung"이란 단어가 있었다. 단어를 부분으로 나누면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저걸 손으로 쓸 때나 소리내서 읽을 때는 참으로 난감하겠다 싶었다.

 

메리 포핀스의 supercalifragilisticexpialidocious도 떠오르고...내친 김에 제일 긴 독일어 단어를 찾아보니, 글자 80개("Donaudampfschiffahrtselektrizitätenhauptbetriebswerkbauunterbeamtengesellschaft"...얼핏 보기엔 컴퓨터 오류 나서 뜨는 형상이거나, 혹은 마구잡이로 키보드를 친 것 같지만 "association of subordinate officials of the head office management of the Danube steamboat electrical services"라는 분명한 뜻을 가지고 있다.)나 된다는 것도 있고, 창조적인(!) 독일어에서 조합만 체계적으로 잘하면 되니 사실상 한계가 없다(....)는 얘기도 있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편의와 실용성을 위해 조금씩 개혁을 이루고하자 하는 의지도 보이지만, 아직도 너무나 멀게 느껴지기만 하는 언어이다. (그 잣대가 주관적일수도 있지만, 사실 독일어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언어들이 많다고 들었다.) .. 음, 결국 잘 배우지 못한 죄책감이 앞서게 되는. 언어의 미아가 되어버렸다.


... Surely there is not another language that is so slipshod and systemless, and so slippery and elusive to the grasp. One is washed about in it, hither and thither, in the most helpless way; and when at last he thinks he has captured a rule which offers firm ground to take a rest on amid the general rage and turmoil of the ten parts of speech, he turns over the page and reads, "Let the pupil make careful note of the following exceptions." He runs his eye down and finds that there are more exceptions to the rule than instances of it.   - excerpts from "The Awful German Language." by Mark Twain.



 


덧글

  • 구필삼도 2013/07/22 07:56 # 답글

    독일어도 단어 길이가 참 길군요.
    저는 러시아어를 하는데, 걔네도 합성어 만들어 쓰는 걸 즐기는 놈들이라 어떤 단어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길어서 발음하다 막히는 불상사가 종종 생기네요ㅋㅋ
  • iris 2013/07/22 23:29 #

    안녕하세요- 와, 러시아어를 하시는군요.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지만, 러시아어는 제게 왠지 범접하기 힘든 영역이에요.. 그 영향력이 대단했던지라 아직도 널리 쓰이고 있는 걸 보면, 배우고 싶다는 마음도 들지만 아마 영영 힘들 듯 해요. ^^;; 러시아어도 합성어가 자주 쓰이는군요! +_+
  • 2013/07/22 17:3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7/22 23:2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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