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건축 - Alain de Botton.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따라서 진정으로 아름다운 작품이란 우리의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투사를 견딜 만한 내적 자산을 갖춘 것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그런 작품은 좋은 특질을 단지 상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체현한다. 따라서 시간적이고 지리적인 기원을 넘어 살아남고, 최초의 관객이 사라지고 나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자신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다. 이런 위대한 작품은 우리의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속 좁은 연상의 밀물과 썰물 위에 우뚝 서서 자신의 속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


.. 우리는 우리 환경이 우리가 존중하는 분위기와 관념을 구현하고, 우리에게 그것을 일깨워주기를 은근히 기대한다. 건물이 일종의 심리적 틀처럼 우리를 지탱하여,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유지해 주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우리 내부에 필요한 것- 그러나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를 잊을 위험이 있는 것-을 표현해주는 물질적 형태들을 주위에 배치한다.벽지, 벤 치, 그림, 거리가 우리의 진정한 자아의 실종을 막아주기를 기대한다. ..어떤 장소의 전망이 우리의 전망과 부합되고 또 그것을 정당화해준다면, 우리는 그곳을 '집'이라는 말로 부르곤 한다.


.. 예술 작품은 우리의 가장 어두운 순간을 환기시켜 눈앞에 펼쳐보이는 것이 아니라, (프리드리히) 실러의 말로 하자면, "잠재적인 것의 절대적 표현"으로 나타난다.  예술은 "이상의 세계에서 내려온 호위자" 기능을 했다.


.. 우리의 타고난 불균형은 실제적인 요구 때문에 더욱 악화된다. 일 때문에 우리의 좁아터진 범위에 한정된 능력은 무자비하게 시달리며, 그 바람에 원만한 인격을 달성할 가능성은 줄어들고, 지금까지 살면서 우리의 존재 또는 우리의 가능성 가운데 많은 부분을 탐사해 보지도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에 빠져들곤 한다 (일요일 저녁에 어둠이 몰려올 무렵이면 특히 그렇다). 사회는 결국 균형이 잡히지 않은 집단들을 광범하게 포괄하게 된다. 그 각각은 자신의 특정한 심리적 결핍을 채우기를 갈망하며, 이것을 배경으로 우리는 종종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냐를 두고 열띤 논쟁을 벌인다.


.. 낭만주의적인 믿음에 따르면 우리는 각자 자연스럽게 아름다움에 관한 적당한 관념을 갖게 된다고 하지만, 우리의 시각적이고 감정적인 기능은 무엇에 주목하고 무엇을 높이 평가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줄 외적인 안내자를 항상 요구하는 것 같다. 우리의 감각을 통해 받아들인 많은 것들 가운데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어떻게 가치를 할당할지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는 힘을 우리는 '교양'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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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건축학과 아틀리에에 다녀왔다. (학교 도서관은 밤 10시면 닫는데, 건축 아틀리에는 24/7 개방이여서 사뭇 놀랐다.)

들어서자 각자의 프로젝트에 몰두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방에 흩어진 종이조각과 모형물들, 맥주병들, 시큼한 풀냄새와 쓰레기가 넘쳐 흐르는 쓰레기통, 여기저기의 stadtplan들... 일요일임을 잊고 분주히 작업하는 학생들.

이쪽에선 독일 노래가 들려오고, 저쪽에선 바이에른 뮌헨과 마인즈 05의 경기를 틀어놓고 작업하는 학생의 탄식이 들려오고 (놀랍게도 뮌헨의 패), 앞엔 수북히 쌓인 커피잔들. 그리고 며칠째 잠을 못 잔게 확연한 퀭한 눈과 부르튼 입술의 친구. 하지만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너무 좋다고 말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고 멋졌는지... 작업실의 혼란 속 자유와 열정, 또 에너지가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차가운 겨울밤을 젊음과 땀으로 지새우는 모습들. 자신의 일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즐기는 열정은 감동이고, 큰 자극이 된다.

또.. 책을 쌓아놓고 마냥 책상에 앉아 씨름하는 내 모습과는 대조적인 그 풍경에, 나도 무언가 tangible한 것을 만들어 내고 싶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words, words, words.. they captivate/fail me...) - 반면, 한 친구는 (창조하는 그 행위보다) 건축을 지지하는, 혹은 그를 둘러싼 이론이나 사상에 더 애착심을 가지고 있다고도 했지만.- 어쨌든, 한결같이 건축을 동경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2012. 11. 11 일기 중.)


'유한성'을 염두에 둔다면 그 어느 것도 쉬이 시작할 수 없을 것이다. 허무함이 앞서기 때문일까. 유한성을 받아들이는 것, 그 도전 과제를 넘고 주어진 몫을 해내느냐, 아니면 '상대적으로' '무한성'을 지닌, 형체가 없는 것들(예를 들어 음악이나 geist)에 매달리느냐. 내게 합의점을 찾는 것은 급선무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만들고, 무엇을 남기느냐...(혹은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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