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and: 2013 Easter. 순간을 믿어요.





April, 2013.

Sosnowiec - Katowice - Gliwice - Zabrze - Krakow - Zalesie Górne - Warsza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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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간 부활절은 모두 친구 D.와 함께 했다. (지금은 종교적 영향력이 많이 쇠약해졌지만)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에서 온 그녀는 가족 모임인 부활절 행사에 날 초대해 주었다. 그리고 지난 가을, D.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끝나 고국에 돌아갔다. 아쉬움에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했었는데, 올해 부활절을 맞아 그녀는 자신의 집으로 날 초대해 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부활절 맞이여행. 이곳에서 폴란드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고, 이것이 네번째 폴란드 여행이었다. 올해 4월엔 이상기후로 유럽 각지에 폭설이 쏟아졌었다. 눈과 함께 하는 부활절이라니. 오리털파카에 긴 부츠를 신고 기차를 타고 D.를 만나러 갔다. 

소도시에 위치한 D.의 집. 동양인이라고는 전혀 눈에 띄지 않는 그 곳에서 그녀의 가족들과 친구들과 친척들까지 만나며 부활절을 보내게 되었다. 친구는 기꺼이 가이드를 자청하며, 공업도시와 각종 자원으로 유명한 실레지아 지방을 보여 주었다. 그 중 특별했던 경험을 뽑으라면. 

- 폴란드어로 진행된 3시간짜리 탄광 투어. 
- 폴란드어로 진행된 2시간짜리 스카이다이빙 워크샵. (이건 인생 랜덤한 경험 top 10 중 하나로 뽑을 수 있을 것 같다. 친구를 따라간 나도 황당/당황했고, 강사분과 다른 수강생들도 황당/당황.) 
- 부활절 당일, 눈을 떴을 때 머리맡에 놓여있던 D의 가족들의 사랑스러운 선물들. 
- 거센 눈보라를 헤치며 갔던 동네 성당. (마침 친구네 동네가 제일 심한 폭설을 겪었다.)
- 친구와 만들어 먹은 호떡.


그리고 여행은 계속 이어졌다. 내가 방문 중인 걸 안 폴란드 각지의 친구들은 만나기 좋은 기회라 여겼고, 우리는 바르샤바에서 재회하기로 했다. 바르샤바 대학에서 폴란드 문학을 전공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만난 친구 A.는 집으로 날 초대해 주었다. (A.는 강아지 두 마리와 아주 큰 자라를 키우고 있었다. 거실에서 그냥 돌아다니는 자라를 보고 식겁했었다.) 그렇게 해서 많은 친구들과 또 만났고, 여기서 또 특별했던 경험을 뽑으라면. 

- 바르샤바 대학 도서관을 구경할 수 있을까요, 물었을 때 주어진 건 '전시회'라는 배지. 그 배지를 단 나는 유일한 동양인, 그렇게 나는 걸어다니는 '전시회'가 되었다.
- 도서관에서 발견한 김영하의 '빛의 제국.' 
- 코르페니쿠스 과학관에 갔을 때 진행된 워크샵. 옛날 방식으로 불 지피는 법을 배웠는데, 강사분은 나를 위해서 영어로 설명하시다가, 정작 제일 중요한 전문 용어들은 모두 폴란드어로 소통하셨다. 그래서 '부싯돌' '(장작, 숯이 타다 남은) 잉걸불'을 의미하는 폴란드어를 배웠다. 
- 좋아하는 감독 kieslowski의 묘지 방문.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참 많이 고생을 했다. 그리고 친구는 집에 돌아와 인터넷 상으로 그의 묘지에 초를 헌정하는 것을 발견했고, 나는 kieslowski를 위해 24시간동안 유효한 'cyber candle light'에 불을 지폈다. (..약간의 돈을 지불하면 cyber flower도 헌화할 수 있다. - 우린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 
- 바르샤바의 마천루에서 근무하시는 친구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회사로 초대해 주셨고, 우린 회사 옥상에 올라가 바르샤바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 이러한 모든 경험의 중심에는 언제나 기억하고픈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를 일들. 아름다운 추억들과 또 친구들의 우정에 늘 감사하면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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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4. 9 일기)


어젠 친구네 가족의 부활절 아침 겸 점심 식사에 함께 하였다. 친절하신 친구 부모님께서 집에서 정성스레 준비해 오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함께 마티니를 마시며 종교, 사회, 문화 등을 망라하는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나눴다. (언어적 장벽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시고 관심 갖아주시는 친구 부모님 모습에 감동 받았고, 많은 것을 배웠다.)

  

이런 대화를 나눌 때 마다 나는 내가 대변하게 될 문화권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또 많은 사회 현상에 대해 'just because..'라든지, 단순한 무관심으로 방관해 왔던 내 태도와 무지가 부끄러워진다. '어째서'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미처 생각해 보지 못 한/않은 것이라 너무나 미흡하고 한정된 대답을 할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경험에 한한 것이라고 덧붙이게 된다. 내가 배워야 할 것은 너무나 많고, 그 과정이 결국은 나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2013. 3. 22 일기)

i. 4월이 다가오건만... 농담 삼아 '눈사람과 함께 하는 부활절'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될 것 같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 다음 주 무려 영하 16도까지 내려간다니...

ii. 어떤 것의 유명세와 scale은 그것의 가치와 꼭 비례하지 않는다. 그러한 사실이 현실에 항상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은 여전히 애석하다. (그 사소한 사실을 보다 많은 이와 공감하고, 공유하며 살 수 있는 곳이 일종의 내 유토피아이다.)  반면 알려지지 않은, 쉬이 볼 수 없는 진정 아름다운 것들이 아직 곳곳에 숨겨져 있다는, 그 sheer possibility/potentiality는 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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