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in. 순간을 믿어요.



Winter, 2006.
Barcelona -  Avila - Madrid - Salamanca - Segovia - Aranjuez - Toledo - Cordoba - Seville - Granada- Mad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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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0. 4 일기)


내 인생 첫 번째 배낭 여행의 추억 중. 

사실 저 당시 난 굉장히 피곤했다. (갑자기 일정이 바뀌어버린...) 바르셀로나 v.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경기를 보고 그야말로 미친듯이 달려서 전철에 올라, 또 열심히 달려서 환승하고,  떠나기 일보직전인 버스를 겨우 잡아탔다. 그리고 그대로 넉다운.

 

바르셀로나-아빌라는 꽤 멀어서 밤새 달리는 버스였는데, 중간에 휴게소도 있고 하여 간단한 식사 쿠폰도 한 장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대로 기절한 듯 잠이 들었고, 언제 휴게소에 들렀는지도 모른 채 밤 버스를 타고 왔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깨어보니 어느덧 아빌라에 도착해 있었고, 나는 정신없이 가방을 들고 내렸다. (그리고 이 때, 아껴두었던 식량-초코 크로와상-을 봉지째 두고 내렸다. ㅠ_ㅠ) 

 

아빌라에 도착한 오빠와 나의 꼴은 가관이었다. 잠이 덜 깨 부시시한 건 둘째치고, 그 무거운 배낭을 메고 정말 미친듯이 달렸던 것의 부작용으로 우리 둘 다 발목/다리가 굉장히 아팠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근 10년만에 오빠 대부님- 신부님을 뵈러 이곳에 왔다. 아직 아침 공기가 싸한 아빌라 역에서 우리는 도저히 이 모습으로는 신부님을 뵐 면목이 없어 급한대로 화장실에 들어가 차림새를 다듬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빌라를 둘러싼 성벽 앞에서 신부님과 상봉.

 

크리스마스를 앞둔 기간, 수도원 식당에서 각국에서 오신 수사님/신부님들과 빠에야와 포도주를 나눠마셨다. 그리고 매일 새벽, 여러 명의 신부님들과 미사를 드리는 특별한 경험. 정말 정말 추웠던 수도원. (매일 밤 동사하는 줄...) 멋진 크리스마스 미사. 야식은 신부님의 금쪽같은 김치와 사발면. 그리고 후식으로 타주신 우유는 내가 8살때 갈멜 수도원에서 마셨던 그것과 똑같은 맛이었고,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또 머무는 내내 아빌라 광장에 널리 울려퍼지던 스페인 유행가는 임창정의 목소리와 정말 똑같아서 매일 웃곤 했던...

 

또 밤에 산책을 하러 올라갔던 동산. 깜깜한 밤, 성벽을 따라 얌전하게 불이 켜지고, 동산에서 둘러봤던 아빌라. '저 쪽에 곧 대학교와 기숙사가 지어질거야.' - 지금은 완공이 된 그 대학에서 강의를 하시는 신부님. 

 

그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이상하게 무릎이 욱신거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내겐 평생 기억 될 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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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0. 28 일기)

수업시간에 과연 우리가 '가난한 나라'를 어떤 잣대로 구분하는지에 대해 토론을 했는데, 교수님께서 GDP나 GNP같은 경제적인 컨셉이나 잘 사는 나라의 가치들 (좋은 자동차, 큰 집 등등...), 즉 물질적인 것들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total quality of life"를 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total quality of life라는 것을 들었을때 불현듯 떠오르는 한 이미지에 잠깐 딴 생각(...)을 하게되었는데, 그 때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풍경은 2년전 겨울의 Cordoba였다.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이슬람 성전에 가톨릭 양식을 덮어씌운 mezquita에 가서, 그 참으로 묘한 조화에 홀린 기분으로 미사를 보고 나왔다. 그런데 날씨가 어찌나 춥던지. 조금 걷다가 오빠를 졸라서 한 빵집에 들어가 무지무지 뜨거운 핫초콜릿을 마셨다. 카운터 근처에 앉아 뜨거운 핫초콜릿을 마시면서 사람들이 빵을 사가거나, 빵집 안에서 담배를 피면서 신문을 보거나, 아님 문 밖으로 두어명의 사람들이 코트깃을 꼭 여매고 지나가는걸 멍-하니 쳐다봤었다. 추운 기운에 머리도 얼어버린건지 정말 멍-하니. 뜨겁고 달콤하고 걸쭉한 핫초콜릿이 몸과 마음을 녹여주고, 이제 좀 살 것같다, 하는 마음으로 거리를 나와 조금 더 돌아다녔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어느 골목에 들어섰다. 사방은 귀여운 가정집들로 둘러 쌓여있었고, 중간에는 자그마한 분수가 하나 놓여있었고, 밑바닥은 시멘트가 아닌 투박한 돌들이어서 울퉁불퉁했다. 또 때 마침 시에스타 중이여서, 주위에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정말 쥐죽은 듯이 조용한 일요일 오후였다. 너무너무 조용해서 돌 위에서 움직이는 발소리를 내기가 미안할 정도. 세상이 멈춰있는게 이런 기분일까-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딱히 멋진 건물도, 스페인을 가득 채우는 그 흔한 문화 유산들도 없는 그저 동네 골목이었는데. 오빠랑 나는 꽤 오랜시간 그 곳에 가만히 서있었던 것 같다. 뭘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유유히 지나가던 말라깽이 떠돌이 개를 보고 있었나. 아님 그저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던 걸까.

 

 

차디찬 겨울공기에 숨소리조차 나지 않는, 쥐 죽은듯이 조용한 오후풍경. 작은 틈새를 제외하곤 막혀있는 막다른 그 곳, 마침 위에선 따스한 햇살이 들어와 가운데 분수를 비췄다. 덕분에 달리의 그림 Persistence of Time 분위기보단 조금 덜 외롭고, 더 잔잔한 느낌이었다. 그 땐 모든게 멈춰있었는걸까. 난 그 순간에 과연 살아있었던 걸까.

 

이 풍경이 도대체 왜 "total quality of life"란 말을 들었을때 내 마음속에 환하게 펼쳐졌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수업 중 이런 딴 생각을 하는동안 마음이 얼마나 고요하고 따뜻했는지- 남이 보면 이상하다 생각했겠지만, 나도 모르게 혼자 빙그레 웃었다.

 

몽상을 깨고 수업을 경청하려니, 놀랍게도 교수님께선 스페인의 시에스타 문화에 대해 말씀하시고 계셨다! (순간 깜짝 놀랐다.)

그러자 어쩌면 total quality of life란 막연한 컨셉은 예상외로- 우리 모두가 비록 실행하고 있진 않지만, 우리에게 따뜻한 느낌을 주는 (시에스타와 한 잔의 달콤한 핫초콜릿처럼.)- 그 무언가를 내포하고, 또 우리 모두는 결국 비슷한 곳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다소 희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걸 적극적으로 갈망하고 쫓지 않을 뿐.

 

 

날마다 뉴스에 보도되는 주식의 폭락으로 "잃어버린" 경제적 손실은 몇 trillion 달러요. 할 때마다, 내 맘에 와닿는 것은 하나도 없다. trillion이란 숫자는 이미 내 상상의 범위를 초월한 큰 숫자 단위이기 때문에 난 도무지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다. 그 없어져 버린 trillion 달러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높아지는 실업률과 낮아지는 취업률, 늘어가는 빚더미들. 그 "expected future earnings"라는 것들은 도대체 어디로 증발했을까. 그건 애초에 그 곳에 과연 존재하기나 했을까.

 

trillion 달러는 내 손에 결코 잡히지 않는 컨셉이다. 하지만 사회는 이것을 분명히 잴 수 있고 숫자로 표현할 수 있으며, 이것을 통해 부유함 등을 과시하거나 경제 위기가 다가왔다며 민감하게 반응한다.

 

반면에 내 마음속에 그려진- 그 추운 겨울 바람속에서도 따뜻했던 시간과 추억의 풍경-은, 내 머리와 마음의 모든 신경들이 하나하나 반응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살아있다.

 

허나 사회는 이런 내 total quality of life에 대한 의미에 아랑곳하지 않고, 결코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 그 매력적인 시에스타의 풍경과 고요함도, 세상 물정 모르고 마냥 졸린 떠돌이 개도,

마냥 맘 좋게 뻑뻑 담배를 피면서 신문을 보던 스페인 할아버지도, 분수위에 환히 비추던 햇살도-   결코 중요치 않다.



- 2013. very interesting article:

http://www.spiegel.de/international/europe/southern-europe-sees-way-of-life-under-threat-a-9081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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