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en. 순간을 믿어요.

(... 이건 구글 검색에서 찾은 이미지..)

Feb. 2012
Vienna, Aust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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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친구의 생일과 짧은 방학을 맞이해서 함께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장소는 비엔나와 프라하.
비엔나는 -before sunrise의 비엔나는- 내겐 처음이었고, 그만큼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설렘이 무색할 정도로, 난 여행을 앞두고 여러가지 이유로 정말 엄청난 몸살이 나서 앓아 누워버렸다.
계속되는 기침에 목소리는 사라진지 오래였고,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따뜻한 꿀물로 연명(?)하며 정말 호되게 앓았다. 이런 상태로 과연 어딜가나 싶었지만, 그래도 비엔나가 아니던가. 나는 모두의 염려를 뒤로 하고, 불굴의 의지 하나로 약을 바리바리 싸들고 성치않은 몸으로 배낭 여행길에 나섰다.


비엔나는- before sunrise가 깊이 새겨놓은 나의 로망의 도시이다. 외국 친구들도 나의 그러한 점을 잘 알고 있는터라, 여행 전부터 농담을 하곤 했다. (게다가 기차 여행이 아닌가.) 그래서 친구들은 (사려 깊게도) jesse를 만날 기회를 제공한다며 기차칸에서 나를 혼자 앉히고, 본인들은 옆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jesse는 무슨. 이라며 나는 감기약에 취해 헤롱거리며 기차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독일 국경을 넘고- 한참을 또 가서 체코 국경을 넘기 전, 한 도시에 기차가 멈췄다. 그리고- 내 앞 자리에 한 남자가 탔다. 음.


그러자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눈빛을 교환하더니, 킥킥대기 시작했다. 
나는 괜히 그 상황이 무안하고 민망해서, 기차 안 스낵칸에 커피 사러 갈게- 하고 자리를 떴다. 그러자 내 뒤를 따라 온 한 친구. 그 짧은 순간에 벌써 "scanning"을 마친 친구는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자, 너의 jesse를 만날 수 있는 기회야. 생김새도 멀쩡하고, coldplay를 듣고 있던데? 나이도 비슷하겠네 ..."


친구들이 그런 분위기로 몰아가니 더 민망할 수밖에. 내 자리로 돌아온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책을 조금 읽다가, 잠을 청했다. (중간 중간에 미친듯이 기침도 했고.) 그리고 드디어 비엔나 도착. 아침 일찍 독일을 떠났지만, 비엔나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해는 저문지 오래였고, 나는 얼른 숙소에 가서 자고 싶은 생각에 잠겨서 내릴 채비를 했다. 


그렇게 짐을 꾸리는데, 그 남자가 말을 걸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니, 비엔나에는 왜 왔니.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대답하려니 그것 또한 고역이었다. 어찌어찌 겨우 대답을 하고 내리려는데, 그 남자는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 건네 주었다.. 


음... 그 장면을 본 친구들의 표정과 반응이란. 더욱더 무안해진 나는 서둘러 기차에서 내렸고, 마치 영화 같았을지도 모르는 그 순간을 반가워하기보단, 친구들의 놀림이 더 두려웠었다. 숙소로 가는 길 내내 친구들은 깔깔대며 웃었고, (오늘날까지도 이 일을 가지고 날 놀린다.) 나는 그 낭만(?)을 곱씹어 볼 새도 없이 친구들의 놀림에 창피하기만 했다.


글쎄, 정말 jesse가 될 수 있었을까. 그도 나처럼 before sunrise를 보고, 비슷한 낭만을 품고 비엔나 기차 여행을 왔던 걸까. 이 일을 떠올리면 가끔 궁금하기도 하고, 뭐, 이젠 웃으며 회상할 수 있는 나름의 추억이 되었다.


-그런데 인생은 결국은 타이밍인 것. before sunrise에서 jesse와 celine의 관계의 주는 '대화'이다. 그런데 나는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었고, 약에 취해 비몽사몽이었으며- 생기와 열정을 지닌 celine이 결코 아니었다. 타이밍, 타이밍의 중요성. 그리고 또 그러한 순간이 다가왔을 때 대처하는 능력(?). 그 모든 것이 맞물려 떨어질 수 있는 완벽한 상황은 jesse와 celine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ii. 그렇게 시작된 비엔나 여행. 정해져 있는 시간 안에 우리가 보고 싶은 것들은 각기 달라서 합의점을 찾기로 했다. 우선 다같이 보고 싶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제외하고, 각자 꼭 보고 싶은 것을 하나씩 고르면 다함께 가주기로 했다. 나를 제외한 친구들은 건축학도들이어서 Otto Wagner와 Hundertwasser의 건축물을 골랐고, 나는... before sunrise에 나오는 Friedhof der Namenlosen (이름없는 자들의 무덤)을 골랐다. 친구들은 내 결정에 경악했지만, 약속은 약속인 것을. 그렇게 우리는 비오는 비엔나를 누비며 이름없는 자들의 무덤을 3시간 동안 찾아 헤맸다.


하지만 영화와 달리, 외곽에 자리한 그 곳을 가기란 꽤 복잡했다. 전철을 타고 종점역까지 간 후, 트램을 두 번 갈아탄 후 한참을 걸어도 나오지 않는 그 곳. zentralfriedhof가 아닌지라 길을 물어도 아는 이가 없었고,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고 점점 더 깜깜해져가는 도시. 그렇게 한참을 헤매다 친구들에게 미안해진 나는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섰다. 친구들은 함께 미안해하며 '현실은 영화보다 덜 쉽지? 한 80%는 영화 같았는데 말야. 하하.'라며 웃었다. 


그렇게 해서 before sunrise의 낭만에 파묻혀 곳곳을 누볐던 내 첫번째 비엔나 여행은 끝. 영화와 현실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느낌으로 (감기약에 취해 그 효과가 두 배였던 듯.) 보냈던 시간들. 여전히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고, 나는 여전히 설레이는 마음으로 다음 비엔나 여행을 상상하곤 한다. 그 낭만만으로도 내겐 충분히 아름다운 곳, 비엔나.
 


덧글

  • 2013/07/01 00:0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7/01 16:4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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