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u. 순간을 믿어요.


May, 2011.
Lima - Cuzco - Machu Picchu - Nazca - Huacachina - L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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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5.6 일기)

새로운 장소에 혼자 있었던 경험은 수없이 많지만, 그 중 기억에 남는건 작년 5월의 어느 날, 페루 나스카이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 아래, 나는 머물던 숙소의 옥상에 혼자 앉아있었다. 이따금씩 바람이 조금씩 불었고, 사방은 연한 흙색의 낮은 건물들- 그리고 맞은편 건물에 그려진 체 게바라 얼굴이 '이곳이 남미인가'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덥긴 했지만 얼음은 없고, 낡은 stove로 (그나마도 작동이 잘 되지 않아 성냥개비로 불을 지펴서) 뜨겁게 커피를 한 잔 끓여서 앞에 놓고, 두 시간정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시간이 어찌나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던지. 아주아주 조용한 5월의 아침,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익숙하지 않은, 이질적이고 참으로 황량하기 그지 없던 주변 풍경과 다른 언어, 그리고 철저하게 혼자였던 나. (동행했던 아빠와 오빠는 일찌감치 나스카 라인 헬리콥터를 타러 갔다.) 참 묘하고 묘한 기분이 들어 글로 몇 자 남기고 싶었지만, 그 마저도 못하고 마냥 몽상에 잠겼었다. 내가 이 낯선 마을에 이대로 혼자 지내게 된다면-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이상하게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그런 것보다, 뭐, 이 곳도 나쁘진 않지만, 이왕이면 쿠스코나 와카치나가 더 낫겠지, 이런 생각도 했었다.


어제 문득 그 날, 그 때의 기분이 생각났다. 그 때 그 형용할 수 없던 기분을 난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여전히 떠나길 두려워 하지 않는 나. 그런데 이렇게 모험심이 투철한다 한들, 마음 속 한켠으론 내가 참 아프고도 슬프게 배운, (또 여전히 부정하고 싶은) 교훈이 날 콕콕 찌른다. 결국엔 나약한 우리들은 '결국' 가장 '익숙'한 곳을 갈망하고, 그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 (어쩌면 다행인가.) 

1년이 지난 지금, 그 곳으로 돌아가 혼자 남겨진다면 난 어떤 생각을 하고 무슨 감정을 느낄까.


- (2013년 6월 더하기). 이 일기를 쓴 후에도 숱하게 떠나고, 또 떠났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금, 그 떠나고 싶은 마음이 많이 사그러졌음에 스스로 어색하다. 아마 전환점이 되었던 건, '지금 넌 어디있니.'라는 질문이 굉장히 슬프게 느껴졌던 작년 연말이었던 것 같다. 이젠 머무를 준비가 된 건가, 어디론가 돌아가고 싶은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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