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 기행 - 김승옥.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그러나 귓속에는 우리의 대화가 몇개 남아 있지 않았다. 좀 더 시간이 지난 후, 그 대화들이 내 귓속에서 내 머릿속으로 자리를 옮길 때는 그리고 머릿속에서 심장 속으로 옮겨 갈 때는 또 몇 개가 더 없어져 버릴 것인가. 아니 결국엔 모두 없어져 버릴지도 모른다.


.. 그 때 내가 쓴 모든 편지속에서 사람들은 '쓸쓸하다'라는 단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단어는 다소 천박하고 이제는 사람의 가슴에 호소해 오는 능력도 거의 상실해 버린 사어 같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 무렵의 내게는 그 말밖에 써야 할 말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었다.


..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희구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 사람들은 매일 매일을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어느 지점과의 거리를 단축시키고 있는 셈이었다. 이것이 나의 그들에 대한 이해였다. 그러나 그 어느 지점이 무한하게 먼 곳에 있을 때도 우리는 그들이 거리를 단축시키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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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0 일기.)


i. 요즘은 날씨가 추운건 둘째치고, 안개가 자욱한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어둑어둑한 날씨에 깊은 안개로 덮혀진 풍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그 누구라도 쓸쓸함, 그리고 사색을 하는 시간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독일이 걸출한 예술가와 철학가등을 배출한 데에 날씨도 분명 한 몫을 했을 것이다.) 베를린에 가면 GDR 때 지어진 fernsehturm이 깊은 안개 속에 묻혀 그 형체를 숨기고 있다. 싸늘한 공기, 무거운 안개로 회색빛이 되어버린 도시를, 그 적적한 날씨가 행인들마저 지워버렸는지 텅 빈 고요한 거리를, 그런 주변을 둘러보다보면- 글쎄, 그 기분을 뭐라고 형용할 수 있을까. (무진기행 속 안개도 이런 것일까.) 그리고 곧 열릴 크리스마스 마켓을 준비하려 쌓아놓은 콘테이너들. 난 따스함을 갈구한다.


ii. 그렇지만 추운 날씨를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운 날씨보다 훨씬 낫다.) 겨울의 알싸한 찬 공기가 좋다. 그래서 옷을 상대적으로 얇게 입고 다니는건가 싶다. 겨울이 선사한, 마땅히 느껴줘야 할 것 같은 추위.

iii. 오늘 아침 창문을 열으며 떠오른 풍경은 작년 11월에 다녀왔던 Gdansk의 아침이다. 철강왕 체력의 교수님 덕분에 이어진 강행군에 쌓여버린 피로와 그리고 새벽까지 클럽에서 놀다온 대부분 친구들 속에 일찌감치 눈을 뜬 건 나 혼자였다. 새벽 6시. 조심스레 문을 닫고 나와, 유일하게 깨어있는 호스텔 리셉션 직원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눈 후, 바람을 쐬러 나가기로 했다.

이른 시간, 텅 빈 거리들. 쇼펜하우어의 생가가 있는, 2차 세계 대전 후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지만 너무나 훌륭하게 재건된, solidarnosc의 발생지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고딕 양식의 벽돌로 지어진 성당이 있는.....- 너무나도 멋진 Gdansk. 도착한 순간부터 반해버린 그 도시의 새벽 공기를 만끽하며 걷는 시간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고요함 속에서 느껴지는 도시의 역사와 기품. 오래 기억하고 싶어 마음 속에 단단히 각인해 놓은 그 때의 그 느낌과 풍경은- 순간 순간 문득 떠올라 낱낱이 펼쳐지고, 난 그리움에 사무치기도 하고, 잠시 그 시간들을 다시 살아보게 된다.

iv.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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