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중순. rambling.



올해는 가을이 어찌나 더디게 오는지, 아직도 많이 덥다. 어제 내린 비로 가을이 한 걸음 더 다가왔으면 좋으련만.



10월에는 회사에서 주관하는 걷기 대회 (-10월 한 달동안 제일 많이 걸었던 그룹에게 상이 주어지는 대회-)가 있어, 친한 이들과 그룹을 짜서 매일 만 보 이상 걷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여행을 가면 하루 4만 보 이상 걷곤 해서, 만 보 정도는 어렵지 않을 줄 알았는데, 출퇴근에 차를 타고, 또 일하는 동안 주로 앉아있으니 생각보다 하루 만 보 걷기가 쉽지 않았다. 평소에 내가 이렇게나 조금 걷는다니.


걸을 거리를 만들어야 하니, 요즘 출퇴근 전후로 열심히 회사 주변을 걷고 있다. 출퇴근에 무심코 지나치는 풍경들.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는 나를 멈춰 세우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관광객들을 만나고 나서야, 익숙하지만 어쩐지 멀게 느껴지는 풍경들을 찬찬히 바라보게 된다.

오전 내내 회의를 하고 (-큰 차질이 없다면 다음 달에 중동에 가게 될 것 같아, 아바야 구입에 대한 대화도 나눴다.), 책을 한 권 들고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베이커리. 빵모자를 쓴 멋진 직원이 너무나 당연한 듯이 프랑스어로 주문을 받는다. 국제기구들이 즐비한 이 근방에서는 생각지도 않은 순간에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라고 자기성찰을 하게 된다. 매 순간 회사 안팎에서 들려오는 온갖 언어의 향연들. 영어로 내가 좋아하는 런치 스페셜 (맛있는 샌드위치, 작은 샐러드, 음료 모두 합해서 $10)을 주문했지만, 더이상 런치 스페셜을 하지 않는다는 답을 듣고 절망했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가져온 책을 폈다. 김승옥의 생명연습. 읽기 전에 책장을 쓰윽 넘겼는데 유독 한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다. "의미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렇죠? 무의미한 겁니다. 아니 사실은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지만 난 아직 그걸 모릅니다." (-서울 1964년 겨울 중.)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문장을 몇 번 곱씹어 본다. 그러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며칠동안 머리를 메웠던 질문들에 맞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래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데?

책을 읽느라 샌드위치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도록 점심시간을 보내고, 아쉬운 마음으로 일어섰다.



조금 더 걷기 위해 반대편으로 방향을 조금 틀었다. 창문에 아직 다가오지 않은 가을 하늘이 일렁이고 있는 모습이 예뻤고, 회사 앞 즐비하게 주차된 베스파들을 보고 어느 이탈리안 멋쟁이가 이걸 타고 출퇴근을 하는 걸까,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로마에 갔을 때, 양복을 입은 채로 베스파를 타고 출퇴근 하는 사람들이 퍽 인상 깊었었다. -참, 내 구글지도는 도대체 무슨 연유에서인지 제멋대로 로마 베네치아 광장을 내 직장으로 설정해 두었다. 베네치아 광장에서 프로젝트 관련 회사 이메일을 확인한 것 외엔 핸드폰을 쓰지 않았고, 구글 지도를 실행시킨 적도 없건만... 어이가 없긴 하지만, 볼 때마다 어쩐지 웃음이 나와서 그냥 그대로 두었다.)


신호등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하늘을 보다가 문득 의미가 없어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구글지도에 뜬금없이 직장으로 저장되어 있는 로마의 베네치아 광장처럼. 프랑스 베이커리의 런치 스페셜은 없어졌지만, 좋아하는 마카롱 가격은 인하되었으니 그건 그것대로 괜찮겠지.

잡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점심시간의 일탈을 멈추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주식 폭락 뉴스. 얼마 되지도 않는 내 몫은 원금조차 사라지는 걸까. 문득 다시 책 제목에 눈길이 간다. '생명연습.' 매일 매일 의미가 있든 없든, 생명연습을 하면서 사는걸까, 사실 모든 건 연습이 아닌 실전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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