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기억 - 윤이형.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영원하지 않은 것들의 애틋함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늙은 나무가 잘려나가거나, 추억의 장소들이 문을 닫았을 때 슬퍼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면 했다. 내게 그런 슬픔은 '인간'의 표지처럼 느껴졌다.

...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모든 불필요한 과거를 망각이라는 순리에 맡기고, 본래 그것들이 가야 했던 곳에 돌려놓고 싶었다. ... 그렇지만 이 모든 소망들은 얼마나 오만한가. 얼마나 절박하고, 얼마나 진실이며, 또한 얼마나 허위에 가득 차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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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만난 건 우연이었다. 아침에 루시드폴의 외줄타기를 듣다가, 노란 우산을 쓰고 하염없이 내리는 함박눈을 맞으며 이 노래와 함께 걸었던 수 년 전 겨울날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고, 더불어 그때 내가 했던 많은 생각들이 오롯하게 기억났다. 그 기억과 생각들은 온전히 나만의 것일까, 스스로 답이 없는 질문을 던지다가 조금 울적한 마음이 되었고, 신청해 놓은 Charles Simic 책이 들어왔다는 알림을 받고 도서관에 다녀왔다. 보통은 예약해 놓은 책만 금방 픽업해 가지만, 그 날따라 한국책들 섹션에 가보고 싶었고, 이 책의 제목만 보고 어쩌면 조금의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어 함께 빌려왔다.

과잉기억증후군을 가진 남주인공 지율의 이야기를 담은 책은 내가 생각지 못한 방향이었지만 좋았고, 나도 내가 가진 민음사판 보르헤스의 '픽션들'이 몇 판 몇 쇄인지, 옮긴이가 누구인지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나는 기억의 방식이 어떻든, 영원하지 않은 것들의 애틋함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먼 시간이 흐른 후에, 누군가가, 혹은 나도 누군가에게, '물론이야, 너를 기억해.'라고 따스하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겨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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