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rambling.


i. 정신을 차려보니, 어쩐지 늘 다른 이의 삶의 풍경이라고 여겨왔던 장면에 바로 내가 들어가 살고 있다. 그동안의 내 인생과는 방향이 달라, 멀게만 느껴졌던 다른 길과 새로운 장면. 나는 이 장면에 언제쯤이면 익숙해질까, 짧고도 긴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혼자 있는 시간에 생각한다. 나 자신을 위해서, 과연 이러한 변화들에 얼른 익숙해지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끝까지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나을지,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ii. 마음은 생각보다 평화롭다. 이러한 평안의 다른 이름이 혹시 체념이 아닐는지, 괜히 더 파고드는 생각을 하려다 그만두기로 한다. 

iii. (여러 가지 이유로) 필요이상으로 매우 일찍 출근하고 있다. 맑은 날 이른 아침 볼 수 있는 멋진 하늘, '90년대 음악'에 맞춰져 있는 라디오 채널, 일을 시작하기 전에 즐기는 책 읽는 시간은 좋다. (요즘 읽고 있는 HHhH는 굉장히 흥미롭다.) 비가 온 다음 날에는 한층 더 붉어져 있는 나뭇잎 색이 반갑다.

iv. 살아가면서 자의로, 타의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그 다양함의 범위는 더 넓어졌고, 예전보다 더 영향력 있는 이들을 직접, 혹은 건너건너 알게 되기도 한다. (세상은 참 좁고도 좁다.) 이러저러한 모습을 보고 들으며, 우리네 삶이 그 어느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기가 막힌다고 생각한다. 내 기준으로는 쉬이 가늠할 수 없는 그들의 삶을, 그들의 행복을 상상해 보려다 또 그만둔다. 그 상상도 결국 나의 섣부르고 어설픈 억측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v. (의식적으로) 남을 판단하지 않기로 한 결심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어렵다. 뒤늦게 Camus의 전락(The Fall)을 읽고 또다시 결심했어도 여전히 어렵다. 

vi. 전락을 읽고, Kieslowski의 Red가 떠올랐다. 두 작품의 연결고리를 상상해보다 구글링 해보니,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분이 쓰신 논문이 있어 굉장히 놀랐다. 논문을 읽고 싶다고 신청을 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답은 오지 않는다.

vii. 다양한 모습을 보아도 '닮고 싶은' 모습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아직 충분히 다양한 모습을 보지 못한걸까... 아니면 큰 궤에서 보면, 결국 다 비슷비슷한 것일까...

viii.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의미로든 인생을 나누고 싶은 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 아닐까 싶다. 이토록 불완전한 우리임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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