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imar. 순간을 믿어요.

니체 아카이브- 니체가 생의 말로를 보낸 곳-를 찾은 날은 공교롭게도 니체의 기일이었다. 한적하기 그지 없는 아카이브에 들어서, '오늘 니체의 기일이네요.' 라고 직원분께 말을 건네니 모르셨다고 한다. 방문객은 나를 포함해 단 세 명. 도시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괴테나 쉴러에 비해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느껴지는 존재감이었다.

간단하게 마련된 전시물을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꼼꼼히 보았다. 전시는 니체 여동생에게도 상당한 부분을 할애했는데, 그녀의 행적을 들으며 씁쓸해 하다가 창 밖 포도넝쿨을 오래오래 쳐다보았다.

옛 것을 접하면,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하여 그것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쉽게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것들. 흥미로웠던 것은 니체의 사상이 파시즘과 나치즘에 어떻게 악용되었는지를 전면으로 보여 주려고 한 후세대의 노력이었다. 무솔리니의 편지와 위버멘쉬 철학을 나치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는데 이용한 히틀러의 각종 행적들.

미쳐버린 천재 철학가가 편안치 않게 여생을 보낸 곳은 세련된 건물과 맞춤 디자인된 가구(by Henry van de Velde)에도 불구하고 적막하고 씁쓸했다.

바이마르는 수많은 예술가와 철학가를 품었던 곳 답게, 어딜가나 그들의 흔적을 쉽게 마주할 수 있었다. 일부러 찾아간 흥미로운 전시회부터,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그들의 이름을 딴 거리 이름이나, 공공 낙서(?)까지.

쉴러의 마지막 글.

독일이 열렬하게 사랑하는 괴테의 작업실.

8월 마지막 주에는 괴테의 270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가 곳곳에서 있었다. (생전에도 유명인이었던 그의 생일 파티는 성대하게 치뤄졌는데, 정작 괴테는 적막을 찾아 혼자 다른 곳에 가 있었다고도 한다. 주인공 없는 생일 파티는 270년 후에도 이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 생일날 괴테의 도시에서 바라 본 석양.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루프탑에 올라가 석양을 보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L은 18번째 생일 축하해, 라고 학교로 생일 카드를 보내왔다. 

독일 유머.

조카가 생긴 후 부터는, 서점에 어린이 섹션도 들리기 시작했는데 (T는 아직 한 살도 안 되었건만...) 서점 한 켠에 동독 시절 어린이 출판물들이 마련되어 있어 꽤 흥미로웠다. (만약 남북이 통일이 되고, 서점 한 켠에서 옛날 북한 동화책이 판매되는 걸 보면 이런 느낌이려나.)

그리고 학교. (그러고보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학교를 다니게 된 것은 두 번째이다.) 여전히 건축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관심을 가지고 문 하나하나, 계단 하나하나, 세심하게 보고 배웠다. 무심히 수업을 듣다가도, 한 분야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라 생각하면, 결코 창문 하나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것. (그런데 수업이 아침 9시부터 밤 9시가 넘게 진행되면, 얼른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냥 휴가나 즐길 것이지, 나는 왜 사서 고생을 하기로 했는가. -수업은 물론 좋았다. 내 체력과 뇌 용량이 보잘 것 없을 뿐.)

단골이었던 학교 카페. 단 1유로에 정말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매일 즐길 수 있었다.

바이마르를 처음 찾았던 것은 8년 전 겨울이었지. 그때는 조금 황량한 모습이었는데, 이렇게 또 인연이 되어, 이번에는 활기차기 그지없는 여름의 모습을 만났다. 언제 또 이곳을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깊고 깊은 가을이었으면 좋겠다. 벌써 그때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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